[박영례, 양태훈, 민혜정기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마침내 성사되면서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을 축으로 한 지배구조가 사실상 완성됐다.
17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각각 합병계약 승인 안건을 처리했다.
이날 삼성물산 주총은 참석률이 84%를 넘어선 가운데 이중 69.53%의 찬성 속 합병안건이 통과됐다.
이로써 지난 5월 26일 양사 합병을 결의 한 지 50여일 만에 합병을 위한 모든 작업을 마무리한 셈이다. 합병 법인은 삼성그룹의 창업정신을 계승하는 차원에서 삼성물산을 사명으로 오는 9월1일 공식 출범한다.
◆이재용 삼성 지배구조 체제 완성
삼성물산이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치열한 합병 저지 공세 속에서도 합병을 이뤄내면서 지난 2013년 말부터 본격화된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을 축으로 한 후계구도와 새로운 지배구조가 사실상 완성된 셈이다.
실제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은 삼성의 지주회사격인 회사와 삼성전자 주요주주인 회사간 결합을 통해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 지배력 강화라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제일모직은 삼성생명 지분 19.34%를 보유한 2대주주로 제일모직(옛 에버랜드)에서 삼성생명, 삼성전자, 삼성SDI, 삼성물산으로 이어지는 삼성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삼성의 지주회사 격이다. 또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 4.06%를 보유한 2대 주주다.
이 부회장은 제일모직 지분 23.23%를 보유한 개인 최대주주 이나 삼성전자 지분율은 0.49%선에 그치고 있다. 이 탓에 이재용 체제의 연착륙을 위해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에 대한 안정적 지배력 확보가 관건으로 꼽혔다.
이번 합병으로 이재용 부회장은 합병법인 지분 16.5%를 보유한 최대주주에 올라서게 된다. 또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7.21%는 물론, 물산이 보유한 4%대 지분까지 삼성전자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게 돼 통합 삼성물산을 중심으로 삼성그룹에 대한 안정적인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대신 이번 합병으로 이 부회장의 두 동생인 이부진 호텔신라사장과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의 지분은 각각 5.5%, 이건희 회장 지분은 2.9%로 낮아지게 된다.
삼성물산 합병 이후 후속으로 삼성전자의 추가 합병이나 지주사 전환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으나 삼성측이 지주사 전환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는 만큼 이번 합병으로 지배구조 개편 작업은 사실상 일단락 됐다는 평가다.
◆3년간의 재편 작업 마무리◆
삼성은 지난 2013년 말부터 옛 에버랜드에 제일모직의 패션사업을 넘기고 이 부회장이 최대주주인 삼성SDS와 SNS 합병, 삼성SDI와 제일모직 소재부문 합병, 화학 등 방산계열 매각, 삼성SDS와 제일모직 상장 등 일련의 작업을 진행해 왔다.
이를 통해 핵심사업 중심으로 계열을 재편하고, 순환출자 고리를 단순화 하는 등 이재용 부회장을 축으로 한 지배구조 개편에 속도를 내온 것.
더욱이 삼성전자 등 주력 계열사의 실적이 악화되고 이건희 회장이 급성심근경색으로 수술을 받은 뒤 1년 넘게 입원 치료를 받으면서 그룹 안팎의 위기감이 고조되자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승계를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긴박한 상황으로 몰고갔다.
그렇다고 작업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오너 일가의 경영승계에 대한 비난 여론도 심심찮았지만 지난해 10월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합병이 무산되는 등 차질을 빚은 것. 이번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역시 오너 일가의 취약한 지분 구조 등을 파고든 엘리엇 측의 공세로 막판까지 상황을 낙관하기 어려웠다.
무산될 경우 이재용 체제 구축에 심각한 차질이 불가피 하고, 통합 삼성물산을 중심으로 본격화 될 바이오 등 신수종 사업도 시작도 전에 동력을 잃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삼성이 이번 합병 성사에 사활을 걸었던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특히 공격 대상이 된 삼성물산은 경영진은 물론 직원까지 나서 주주 상대로 합병 당위성과 시너지를 적극 호소, 합병을 이뤄내는 뒷심을 발휘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으로 합병법인은 매출 34조원 규모의 패션, 식음, 건설, 레저, 바이오 사업 등을 포괄하는 기업으로 거듭나게 된다.
건설, 상사, 패션, 리조트, 식음 등과 신사업인 바이오까지 글로벌 경쟁력강화와 시너지 효과로 오는 2020년 매출 60조원 규모의 기업으로 성장한다는 전략이다.
◆이재용 시대, 승부수는 바이오
오는 9월 삼성물산 합병법인이 출범하면 삼성은 이 부회장을 중심으로 합병 삼성물산 – 삼성생명- 삼성전자 등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지배체제를 갖추게 된다.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 1991년 삼성전자에 입사, 본격적인 경영수업에 나선 지 23년만에 이건희 회장을 뒤잇는 삼성의 후계구도가 완성된 셈이다.
실제로 이 부회장은 2001년 상무보로 경영에 본격 참여한 뒤 지난 20013년 삼성전자 부회장에 오르기까지 다양한 대외 활동을 통해 차근차근 경영보폭을 넓혀왔다.
특히 지난 5월 병중인 이건희 회장을 대신해 선대 회장이 맡던 삼성생명공익재단 및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에 선임되는 등 그룹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행보를 본격화 했다.
최근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로 삼성서울병원이 논란에 휩싸이자 재단 이사장으로 대국민 사과에 나선 것 역시 삼성을 대표하는 오너로서 본격적인 역할에 나섰다는 시각이 지배이었던 만큼 이제 회장 취임 등 공식 선언만 남았다는 평가다.
특히 이재용 시대 삼성의 차기 핵심 사업은 바이오가 될 공산이 크다. 삼성이 이번 삼성물산 합병과 함께 바이오 사업을 전면에 내세운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바이오·제약은 지난 2010년 삼성이 5대 신수종 사업으로 집중 육성키로 했던 분야 중 하나.
이재용 부회장 역시 공식 석상에서 "삼성은 IT, 의학, 바이오 융합을 통한 혁신에 큰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언급할 정도로 의지를 보이고 있기도 하다.
현재 삼성은 삼성전자 삼성물산, 제일모직이 공동 투자한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운영중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바이오시밀러(복제약)를 생산하는 회사로 제일모직과 삼성전자가 각각 지분46.3%, 삼성물산이 4.9%를 보유중이다. 또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바이오시밀러 연구개발(R&D) 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 90.3%를 보유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이번 합병으로 바이오로직스 지분 51%를 가진 최대주주가 된다. 삼성물산이 삼성의 지주회사 역할은 물론 신수종 사업인 바이오 사업의 구심점 역할을 하게 되는 셈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새 지배체제를 구축하고 바이오 사업에 역점을 두고 나선 것은 이건희 회장 등 선대 회장이 반도체를 발판 삼아 지금의 삼성을 키운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갖는다.
이병철 선대 회장과 이건희 회장은 1980년 초 신사업으로 반도체 진출을 결정, 이를 뚝심있게 밀어 붙이면서 반도체는 지난 30년간 삼성의 캐시카우 역할을 톡톡히 했다. 삼성은 반도체로 벌어들인 막대한 이익을 휴대폰과 TV 분야에 집중 투자했고, 이는 이분야 세계 1위 달성의 뒷심이 됐다.
더욱이 현재 삼성은 TV, 가전, 스마트폰 등 삼성전자 주력 사업의 글로벌 성장이 정체국면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전기 마련이 절실한 시점. 이에 따라 바이오는 이재용 시대를 맞아 삼성의 도약을 이끌 새로운 성장엔진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삼성물산 합병으로 이같은 바이오 사업에도 본격적인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시장 전문가들은 2020년 통합 삼성물산 전체 영업이익 중 바이오 부문 비중이 30%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실제로 삼성은 최근 기업설명회를 통해 오는 2016년부터 바이오시밀러 제품 판매에 돌입하고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미국 나스닥 상장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를 통해 자금을 조달, 오는 2020년까지 바이오시밀러 부문 생산능력을 40만 리터까지 확대하고 매출 1조 8천억 원, 글로벌 바이오·제약 업계 10위에 진입한다는 목표다.
박영례기자 young@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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