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다운기자] '핀테크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크라우드펀딩이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개화한다. 투자형 크라우드펀딩에 대한 법적 바탕이 마련돼, 후원에 치중됐던 크라우드펀딩 시장이 목마른 스타트업 기업과 벤처기업에 자금줄을 댈 수 있는 창구로 확대될 전망이다.
2년 넘게 국회에서 계류중이던 '크라우드펀딩법(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 지난 7월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법안은 내년 초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크라우드펀딩은 다수에게 소액의 자금을 모아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제공하는 '십시일반'형 자금조달 창구라고 할 수 있다. 크게 개인간(P2P) 대출, P2P 투자, 기부 및 후원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동안 국내에서 크라우드펀딩은 네이버의 '해피빈' 같은 기부후원 서비스를 제외하면 리워드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리워드 방식이란 대량 생산하지 않는 제품이나 공연 등에 대한 아이디어나 시제품을 선보인 뒤, 선주문을 통해 모인 자금으로 생산된 결과물을 투자자들에게 돌려주는 크라우드펀딩을 말한다. 리워드형 크라우드펀딩은 대부분 1인당 투자 금액이 3만~5만원이며 한 프로젝트당 1천만원 이하인 소규모 시장이어서, 스타트업·벤처 기업들이 필요한 자금 마련에는 부족했다.
하지만 크라우드펀딩법으로 자본시장법상 증권을 발행하는 투자형 크라우드펀딩의 기틀이 마련됨으로써 국내에서도 P2P 투자, 즉 투자형 크라우드펀딩 시장이 열릴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일반 투자자는 연간 500만원까지 크라우드펀딩 투자 가능
이번에 마련된 크라우드펀딩법에는 크라우드펀딩 중개를 담당하는 '온라인소액투자중개업자' 신설, 발행인투자자간 의사소통 허용 등이 포함됐다. 발행기업의 연간 발행한도는 7억원으로 제한된다. 일반 투자자의 경우에는 한 기업당 200만원, 연간 500만원까지밖에 투자할 수 없으며 전문투자자의 경우에는 투자 제한이 없다.
투자형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자금을 모집하려면 창업한 지 7년 이하의 중소기업이어야 하지만, 금융위는 시행령을 통해 신기술개발, 문화사업 등 프로젝트 사업을 하는 경우에는 7년 이상된 기업도 이용할 수 있게 했다.
또 크라우드펀딩 투자자들은 취득 지분을 1년 동안 팔지 못하게 돼 있으나, 전문투자자나 발행인 등에 대해서는 전매 제한을 없앴다.
크라우드펀딩 업체들은 철저히 자금이 필요한 기업체와 돈을 투자하려는 투자자를 이어주는 '중개' 업무만을 하게 된다.
크라우드펀딩 업체가 직접 투자자의 자금을 보관하거나 예탁받는 것은 금지되고, 청약 증거금은 은행이나 증권사 등에 예치해야 한다. 중개업자인 크라우드펀딩 업체가 직접 투자를 하거나 투자자에 대한 투자자문, 발행기업에 대한 경영자문을 하는 것도 금지됐다.
창조경제혁신센터에는 내년 1월까지 개방형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이 구축돼 기업들과 투자자를 연결하는 기능을 할 예정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플랫폼 오브 플랫폼' 개념으로 자금 조달을 원하는 기업들이 등록을 하면 크라우드펀딩 중개업체들이 정보를 제공받는 기능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목마른 창업기업에 자금줄 기대
현재 국내 크라우드펀딩 시장은 100억원 정도에 불과하지만, P2P 투자형 크라우드펀딩 시대가 열리게 되면 향후 5년 안에 시장 규모는 2천억~5천억원 수준까지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게다가 업계에서는 현재 크라우드펀딩 자금을 필요로 하는 기업체의 수요가 8천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시장이 자리잡히게 되면 1조원 가까운 자금 조달 창구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고 대표는 앞으로 크라우드펀딩의 주요 대상은 설립한 지 3년여 정도의 스타트업 창업 기업으로 3억원 내외의 자금 모집 수요가 가장 활발할 것으로 예상했다.
와디즈 신혜성 대표도 "기존 리워드 중심의 크라우드펀딩은 제품이나 기념품 등 투자자에게 돌아가는 이득이 제한적이었으나 이제는 주식 발행 등으로 지분을 나눠주는 식으로 명확한 투자가 이뤄지면서 시장이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해외에서는 이미 크라우드펀딩 사업이 2000년대 중후반부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1천개 이상 업체가 활동중이며, 지난해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모인 자금 규모는 약 162억달러(19조3천억원)로 전년 대비 167% 급증했다. 올해에는 344억달러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지난해 크라우드펀딩 투자 중에서는 창업기업에 대한 투자가 67억달러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정부가 그리고 있는 큰 그림도 창업 초기 기업에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자금 물꼬를 트고, 이후 코넥스와 코스닥 상장을 통해 중견기업으로 키워나가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올해 안에 거래소를 중심으로 증권유관기관들이 크라우드펀딩, 코넥스, 코스닥시장과 연계한 창업지원센터를 개설할 계획도 내놨다.
창업지원센터는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 기업에게 추가적인 투자유치와 코넥스 상장을 지원하고, 코넥스기업에 대해서는 시장을 통한 자금모집과 코스닥 이전상장을 지원하게 된다.
◆국내 크라우드펀딩 업체들도 '잰걸음'
한국크라우드펀딩기업협의회에 등록된 크라우드펀딩 기업은 현재 18개이며, 등록되지 않은 기업 등을 포함하면 국내에서는 30~40개의 다양한 크라우드펀딩 기업들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내년부터 온라인소액투자중개업(크라우드펀딩업)의 자격을 획득하려면 5억원 이상의 자본금을 갖춰야 하므로 업계에서도 기본 자격과 시스템 개발을 분주히 진행하는 상황이다.
현재 가장 P2P 투자형 크라우드펀딩 사업에 가까운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오픈트레이드는 자본금 등 자격 요건을 맞추기 위해 준비중이며, 대표적인 리워드형 크라우드펀딩 업체인 와디즈도 투자형 크라우드펀딩 사업으로 진출을 계획중이다.
와디즈의 신 대표는 "개인들이 유망한 초기 비상장기업에 낮은 금액으로도 투자할 수 있도록 하는 시장을 만들 것"이라며 "회사가 성장하면서 투자자가 수익을 올려 자금을 회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굿펀딩, 씨앗펀딩, 오마이컴퍼니, 오퍼튠, 위제너레이션, 유캔펀딩, 텀블벅 등의 크라우드펀딩 업체들이 초기 국내 크라우드펀딩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대출형 크라우드펀딩에 대한 논의도 시작
크라우드펀딩법으로 P2P 투자에 대한 문은 열렸지만, 글로벌 크라우드펀딩 업계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아직까지 갈 길이 멀다.
특히 크라우드펀딩의 한 축으로서 'P2P 대출'로도 불리는 대출형 크라우드펀딩의 법제화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은 아쉬운 점이다.
대출형 크라우드펀딩이란 대출 플랫폼을 가진 회사가 온라인상에서 개인과 개인의 대출을 중개해 주는 사업을 말한다.
머니옥션, 팝펀딩, 펀딩트리 등 대출형 크라우드펀딩 업체들이 국내에도 있지만, 기존 법적 요건을 맞추기 위해 대부업 등록이나 여신기관과 제휴하는 식이어서 아직까지 시장 형성은 제한적이다.
현대증권 김지운 애널리스트는 "크라우드펀딩이 더욱 활성화되려면 대출형 크라우드펀딩에 대한 법제화도 필요하다"며 "대출형 크라우드펀딩은 지난해 이뤄진 크라우드펀딩 규모 중 85.6%를 차지할 만큼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큰 시장"이라고 강조했다.
정부에서도 계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핀테크 산업 육성 정책에 따라 대출형 크라우드펀딩 규제 완화를 염두에 두고 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최근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P2P투자의 근거가 마련됐고, 제도가 정착돼 가는 과정을 본 뒤 P2P대출 허용 여부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며 "연내 공청회를 열어 폭넓게 의견을 듣겠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현재 대출형 크라우드펀딩의 해외 상황과 시사점 등에 대한 연구용역을 진행중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올해 안으로 연구용역이 완료되면 비슷한 시기에 공청회를 열고 방향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대출형 크라우드펀딩의 경우 증권을 발행하는 투자형 크라우드펀딩보다 위험성이 높기 때문에 개인투자자 보호에 취약하다는 점은 우려사항으로 꼽힌다. 투자형보다 상대적으로 큰 규모의 자금을 직접 빌려주고, 대출자들도 저신용자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우리금융연구소에 따르면 중국의 경우 지난해 말 대출형 크라우드펀딩 업체가 2천여 개에 육박하지만, 전체 대출의 10%는 연체됐거나 채무불이행 상태에 있으며, 지난해 250여 개의 업체가 페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금융연구소 김종현 선임연구위원은 "국내에서 대출형 크라우드펀딩을 건전하게 육성하기 위해서는 먼저 중국과 같이 P2P 대출 중개업체들이 불법 사금융업체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투자자를 충분히 보호할 수 있는 규제안을 마련하고, 지금과 같은 대부업이 아닌 다른 형태로 P2P 대출 중개업을 합법화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논의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다운기자 kdw@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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