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경기자] 은행에서 적립식펀드 판매가 본격화된 2005년 이후 펀드의 대중화가 이뤄진 지 어느덧 10년의 세월이 지났다.
23일 유안타증권이 적립식펀드 대중화 10년을 분석하고 앞으로의 펀드 시장을 전망한 보고서를 발표해 소개한다.
유안타증권 김후정 애널리스트에 따르면 90년대 후반 외환위기를 지난 후 저성장·저금리 국면에 들어서면서 투자자들이 예금 아닌 새로운 투자수단을 찾게 됐는데, 당시 국내 주식시장이 레벨업되면서 증시가 강세를 보이며 펀드가 주목을 받게 됐다.
펀드 대중화의 도화선은 은행이 펀드를 적립식 형태로 팔기 시작한 것이었다. 증권사보다 훨씬 많은 영업망 덕분이었다. 은행들은 저금리로 예적금 고객이 예전만 못하자 펀드 판매에 힘을 싣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국내주식펀드는 2004년말 8조8천억원에서 4년 후인 2008년 4월에는 78조8천억원까지 9배 가깝게 성장했다. 기관투자자 중심이던 펀드 시장도 적립식 펀드 대중화 후로 개인투자자의 영향력이 강해진 시장으로 변하게 됐다. 또 2005년 3%를 넘었던 시가총액 대비 펀드 비중은 2009년에는 10% 가까이로 늘어났다.
펀드를 찾는 투자자가 많아지면서 펀드 라인업도 다양화됐고, 펀드수도 폭발적으로 늘게 된다. 액티브주식펀드 이외에 배당주펀드, 가치주펀드, 중소형주펀드, 그룹주펀드 등도 이 무렵 첫선을 보였다.
◆글로벌 금융위기, 투자자들에게 '트라우마' 남겨
2000년대 중반 중국과 인도, 브라질, 러시아 등 이른바 브릭스(BRICs) 국가들이 뜨면서 해외주식펀드도 2007~2008년 폭발적 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2008년 9월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과잉투자됐던 해외주식펀드의 손실이 커졌고, 투자자들도 해외주식펀드를 외면하게 됐다.
김 애널리스트는 "일반적으로 금융위기를 겪으면, 위험자산에 대한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를 극복하는 데 5년 정도 걸린다"며 "해외주식펀드 비중을 늘렸던 우리나라 투자자들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큰 고통을 겪었고, 금융위기로 투자자들의 위험민감도가 높아지면서, 중위험 상품에 대한 수요가 커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인기를 모으게 된 것은 자문형 랩, 해외채권펀드, 주가연계증권(ELS) 등이다. 이 가운데 ELS는 다양한 상품이 출시되며 아직도 인기가 이어지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주식시장의 박스권 장세는 국내주식펀드시장의 변화를 촉발시켰다. 코스피 1850~2100선의 박스권 장세가 5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저가 매수·고가 매도'의 투자 행태가 고착화된 것이다. 이 기간 동안 코스피 2000선은 국내주식펀드의 환매 기준점이 됐다.
이 같은 흐름은 펀드의 기대수익률 저하로 연결됐고, 시장의 자금은 액티브주식펀드보다는 보수가 낮은 인덱스펀드로 이동하게 된다.
또 성과가 좋은 신생펀드로도 자금이 몰렸다. 대형주보다 중소형주 성과가 좋게 나타나며 중소형주펀드로의 자금 유입도 본격화됐다. 2012년 하반기 1조원이던 중소형주펀드는 지난 10월말 3조3천억원을 넘었다. 작년에는 정부의 배당확대 정책에 힘입어 배당주펀드가 각광 받았다.
올해 펀드시장에서는 공모주펀드와 혼합채권펀드가 인기였다. 중위험 중수익 상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데다 정부의 기업공개(IPO) 활성화 정책 등이 영향을 미쳤다. 혼합채권펀드는 예금 금리 플러스알파를 기대할 수 있어 관심을 모았다.
◆저성장·저금리 환경, 저축에서 투자로 변화 촉발
이처럼 저성장·저금리 환경은 저축 패러다임을 투자 패러다임으로, 안전자산 투자는 위험자산 투자로 바뀌고 있다.
김 애널리스트는 "과거 10년은 저축에서 투자로의 과도기적 단계라 볼 수 있으며, 우리나라 투자자들은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금융 지식과 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투자 관련 제도나 인프라도 많이 개선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앞으로는 연금과 보험 등 은퇴관련 자산이 많아지면서, 개인보다는 기관투자자의 영향력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개인 비중이 높은 펀드자산의 규모는 추세적으로 줄고 있지만 기관이 선호하는 직접 계약 형태인 투자일임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상태다. 투자일임자산은 고객별 단독운용이 가능해 기관이 애용하는 경향이 있다.
아울러 연기금, 보험 등 은퇴준비를 위한 자산 증가가 기관투자자가 투자하는 투자일임과 사모펀드 증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관측됐다.
김 애널리스트는 "원리금보장형 중심으로 운용되던 퇴직연금에 실적배당형상품 비중이 증가하고, 보수적이던 연기금과 공제회가 주식 비중을 늘리는 점도 기관투자자 영향력 확대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기관투자자의 포트폴리오 특성상 앞으로는 중소형주보다는 대형주에 더 무게가 실릴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김 애널리스트는 수익률 제고를 위해서는 해외에서도 투자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만 하더라도 국내주식펀드보다는 미국주식펀드, 일본주식펀드의 성과가 훨씬 높았다며, 수익률 제고를 위해 위험자산을 늘려야 한다면 분산 효과를 통한 위험 관리를 염두에 두고 포트폴리오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내년에는 환율 효과로 수출이 바닥권을 탈출하고 부동산으로 내수가 호전되는 양상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며, 몇 년 동안 제자리 걸음을 해 온 우리나라 증시가 움직이면서, 대형주에 유리한 환경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해외자산 중에서는 채권보다는 주식에 투자를 해야 하며, 경기 회복이 가시화되는 미국과 정책 효과가 기대되는 유럽이 상대적으로 유망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혜경기자 vixe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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