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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AI는 접대골프처럼 아슬아슬하게 져주는 게 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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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엔씨소프트 이재준 상무…'블소'로 풀어보는 게임 AI의 세계

[문영수기자] 지난달 '알파고'가 이세돌9단을 꺾으면서 인공지능(AI)은 단숨에 화젯거리로 급부상했다.

사람의 학습능력과 추론, 자연어 이해능력 등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실현한 인공지능은 현재 세계 각국이 경쟁적으로 개발하고 있는 핵심 기술로 손꼽힌다. 인간의 삶을 보다 윤택하고 편리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게임 역시 AI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는 분야 중 하나다. 게임의 본질인 '재미'를 더욱 이끌어줄 재료로 AI가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용자의 지휘를 받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AI 분대원, 실제 사람처럼 행동하는 AI NPC는 게임의 생동감을 한층 더해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활발히 AI 연구를 진행하는 게임사 중 한 곳인 엔씨소프트를 찾아 게임 AI에 대해 물었다.

◆지기 위한 AI…'무한의탑'에 강화 학습 기술 적용

"일부러 져준다는 걸 느끼지 못하게 하면서도 굉장히 아슬아슬하게 이기게 해주잖아요? 게임 인공지능(AI)의 궁극적 목표가 이러한 접대골프와 같습니다.(이재준 상무)"

엔씨소프트 인공지능 센터를 이끌고 있는 이재준 상무는 14일 기자들과 만나 게임 AI의 지향점은 '지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람(이용자)에게 재미를 주는 것이 게임 AI의 지상 과제라는 이유에서다. 바둑에서 이기는 것이 목적인 '알파고'와 게임AI는 정반대의 방향을 지향한다는 얘기다.

이 상무는 "AI는 이기기 위한 '굿(Good) AI'와 지기 위한 '펀(Fun) AI'로 나뉜다. 알파고가 굿 AI라면 게임 AI는 펀 AI"라며 "게임 AI에 지더라도 최소한 왜 졌는지 납득이 돼야 사람에게 다시 도전 의욕을 고취시킬 수 있다. 게임 AI는 똑똑하기만 해서는 부족하다. 게임은 즐기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엔씨소프트는 게임 AI의 연구를 넘어 실제로 적용하는 단계에 이른 게임사다. 이 곳은 온라인 게임 '블레이드앤소울'에 AI 캐릭터와 1대1 대전을 벌이는 '무한의탑'을 올해 1월 업데이트했다. 'AI와 대결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이 콘텐츠는 실제 사람과 맞붙는 듯한 재미를 제공한다. 실력에 따라 AI가 난이도까지 결정한다.

엔씨소프트는 생동감 있는 대전 상대를 만들기 위해 강화학습 기술을 활용했다. 말 그대로 반복 학습을 통해 AI가 최적의 방법을 찾도록 유도하는 기술이다. 수많은 기보를 보며 바둑을 학습한 알파고와 동일한 원리를 적용한 것이다. 여기에 현재 주어진 정보를 해석해 최적의 행동이 무엇일지 결정하는 '디시전 메이킹' 기술과 인공신경망을 기반으로 한 기계 학습 기술인 '딥러닝'도 함께 접목됐다.

최초의 AI 캐릭터는 약했다. 각종 기술을 무작위하게 사용했다. 찬스 상황에서도 효과적인 공격을 펼치지 못했다. 엔씨소프트는 AI끼리 겨루게 해 어떻게 싸워야 승리할 수 있는지 학습하게 했다. 회를 거듭하면서 AI는 점차 나아졌다. 결국에는 상대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기절 기술을 연속해서 사용하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이 상무는 "경험을 통해 학습시키는 강화학습을 통해 문제를 풀었다"며 "강화학습과 딥러닝(마치 사람처럼 스스로 학습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인공신경망을 기반으로 한 기계학습기술)을 통해 AI의 성능을 올리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러 AI 성능을 저하시키기도 했다. 이 역시 재미와도 관련이 있다. 무수한 반복학습을 통해 숙달된 AI는 이용자가 키보드를 누르는 순간 이미 이후 무엇을 할지 의도를 파악하고 그에 따른 대응을 했다. 'AI가 내 생각을 읽는 것 같다'는 말까지 내부에서 나올 정도였다. 이래서는 사람과의 '공정한' 경기가 이뤄질 수 없었다.

그는 "사람이 버튼을 누르는 순간 AI가 대응하는 반응속도는 인간보다 빠를 수밖에 없다"며 "지연시간을 일부러 집어넣는 등 AI가 너무 기계적으로 움직이지 않도록 조절했다"고 말했다.

◆게임 AI 어디까지 왔나

이 상무는 게임 AI가 가야할 길이 멀다고 했다. 연구를 통해 발전시킬 분야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현재 게임 AI의 정의는 NPC가 마치 지능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면 된다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을 예로 들기도 했다. 그는 "이같은 게임 AI의 정의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며 "게임 AI는 게임 안의 복잡한 문제를 풀어주는 도구라고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게임 AI가 ▲정도껏 똑똑하고 ▲예측이 되지 않아야 하며 ▲감정을 구현해야 한다는 방향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모두 게임의 재미와 관련이 있다.

게임 AI가 너무 똑똑하면 재미를 반감시키는 만큼 어느 정도 '하향 조정'을 할 필요가 있다. 또 정해진 패턴만 반복하는 AI는 금새 파훼법이 나오기 때문에 이 역시 재미가 떨어진다.

AI가 인간의 감정을 흉내내는 것도 재미에 영향을 미친다. 가령 3명의 분대원이 사망하고 임무를 완수했다면 AI가 웃고 기뻐하기보다 슬퍼하는 반응을 보여야 한다는 의미다.

실제 유명 콘솔 게임 '어새신 크리드'의 경우 이용자가 조종하는 캐릭터가 나아갈 때 사람들이 바라보고, 병사와 칼 싸움을 벌이면 사람들이 놀라 쳐다보기도 한다. 이 상무는 "예전의 AI는 그저 정해진 행동만 하는 '병풍' 역할만 했는데, 최근 기술은 사람처럼 자연스러운 행동을 보이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덧붙였다.

이 상무는 "게임은 AI의 각종 방법론을 대입하기 좋은 시험대"라고도 했다. 대규모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과 같은 가상의 게임 속 환경은 모든 것이 실제 환경과 유사하게 벌어지는 만큼 일종의 AI 시뮬레이션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그는 "가상 세계에서도 사람들은 일상과 비슷하게 활동한다"며 "실생활의 복제판인 게임은 AI 연구를 위한 굉장히 좋은 시험대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게임은 AI 연구를 위한 좋은 도구로 쓰이고 있다. 실시간 전략게임 '스타크래프트'를 플레이하는 AI를 개발해 우위를 겨루고 있어서다. 정기적인 대회까지 열릴 정도다. 초반에는 유닛의 개체수가 적고 조작이 비교적 쉬운 '프로토스' 종족이 우세했으나 지금은 보다 복잡한 컨트롤을 요구하는 '저그'나 '테란'도 대회에서 종종 우승한다고 한다. 그만큼 게임 AI가 발전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바둑과 스타크래프트 중 어느 것이 AI 구현이 어려울까. 이 질문에 이 상무는 스타크래프트의 손을 들어줬다. 상대의 수에 따라 진득이 여러 경우의 수를 따져볼 수 있는 바둑과 달리, 스타크래프트는 실시간으로 펼쳐지고 상대 정보를 볼 수 없으며 전략 구성 등 여러 경우의 수를 복합적으로 따져봐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스타크래프트 AI는 현재 학계에서 연구하는 수준이 사람을 이기지는 못하는 상태다"고 말했다.

◆인공지능? 공포 대상 아니다

지난달 알파고가 이세돌9단에 승리한 이후 우리 사회에는 'AI 포비아' 현상이 나타났다. AI의 발전으로 인해 인간이 설 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거세게 일었다. 나아가 영화 '터미네이터' '매트릭스'와 같은 디스토피아가 임박한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정말 AI의 발전은 이같은 불행한 결말을 불러올까. 이 상무는 '소설의 영역'이라고 일축했다. AI 연구자 입장에서 사람을 지배하는 AI 로봇의 출현은 너무나 먼 얘기라는 것이 이 상무의 견해다. 그는 "사람처럼 생각하고 판단하는 AI를 강 인공지능(Strong AI)이라고 하며 큰 목표인 것은 맞다"면서도 "사람처럼 사고하고 해결하는 AI를 만드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지금은 주어진 과제를 푸는 것조차 어려운 수준"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러한 이유로 현재 많은 연구기관들은 강 인공지능 대신 약 인공지능(Weak AI)을 연구하고 있다. 사람처럼 생각하는 것이 강 인공지능이라면 약 인공지능은 특정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바둑의 문제를 푸는 알파고나 블레이드앤소울에 구현된 AI 콘텐츠 무한의탑 역시 이에 해당된다. 일상생활에서 널리 쓰이는 로봇청소기 역시 약 인공지능이 접목된 사례로 볼 수 있다.

이 상무는 "AI는 이미 우리 생활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다만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며 "네비게이션의 길찾기 안내, 무인이동체(드론), 페이스북의 뉴스피드 기능 등은 모두 약 인공지능이 접목된 사례"라며 "AI라는 도구를 사용해 어려운 난제를 풀 수 있다"고 전했다.

이 상무는 AI를 통해 엔씨소프트의 기술력을 입증하겠다는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더이상 화려한 그래픽이 큰 경쟁력이 되지 못하는 현재 상황에서 AI 기술은 엔씨소프트만의 차세대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영수기자 mj@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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