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정기자] 더불어민주당 '86(80년대 학번·60년대생) 운동권 그룹'의 대표주자인 우상호 의원이 4일 제1당의 원내 사령탑에 올랐다.
우 원내대표는 1987년 연세대 총학생회장과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부의장을 하면서 민주화운동 선봉에 섰다. '6월 항쟁' 시위 과정에서 숨진 대학 후배 이한열씨를 위한 서울시청 앞 대규모 장례식의 집행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전대협 출신인 이인영, 오영식 의원과 함께 '젊은 피'로 영입하면서 제도권 정치를 시작했다.
16대 총선 당시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서대문갑에 출마했으나 연세대 81학번 동문인 당시 한나리당 이성헌 전 의원에 고배를 마셨다. 이후 17대 총선에 열린우리당 깃발로 이 전 의원과의 '리턴매치'에서 승리하면서 국회에 처음 입성했다.
19대 국회에서는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에서 야당 간사로 활동했다. 이번 원내대표 선거에서도 가계 통신비 인하 방안을 중점 추진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우기도 했다. 운동권 출신의 진보적 성향이라는 이미지와 달리 IT 산업에 대한 이해도 깊다.
또 우 원내대표는 열린우리당, 통합민주당, 민주당 대변인에 이어 2011년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대변인까지 지냈다. 방송개혁위원회 대변인 등 당외 보직을 포함하면 총 8번의 대변인을 역임했다.
조리있는 말솜씨로 특별한 계파색이 없으면서도 당내 다양한 계파 소속 의원들과 소통이 가능한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당 내 대표적 전략기획통 중 한명이다.
그는 출마 회견에서 "국민과의 소통은 곧 언론과의 소통"이라며 "기민한 언론 대응을 통해 당의 이슈 주도권을 놓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안철수 대표의 탈당으로 이어진 주류와 비주류의 갈등 국면에서도 당 내 수도권 및 중진 의원들 주도로 만들어진 중재안을 문재인 당시 대표에 전달하는 등 분당 사태를 막으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한편 우 의원은 이날 원내대표 경선에서 결선 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120표(무효 1표) 가운데 63표를 득표, 56표를 얻은 우원식 의원을 7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됐다.
앞서 1차 투표(121명 참석)에서 우원식 의원이 40표, 우상호 의원은 36표를 각각 얻었으나 재적 과반(62명) 득표자가 없어 두 사람을 상대로 결선 투표가 실시됐으며 결선에서 역전이 연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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