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숙기자] 새누리당 친박계가 비박계 중심의 비상대책위원회·혁신위원장 인선에 반발, 집단행동에 나서면서 비대위·혁신위 구성이 사실상 좌절됐다. 당 전체가 걷잡을 수 없는 혼돈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 것이다.
20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 폭발한 계파 갈등은 총선 참패 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었다. 이달 초 원내대표 경선에서 계파색이 옅은 '화합형' 정진석 의원이 원내대표로 선출될 때만 해도 당 전체가 총선 참패 수습 국면에 접어드는 듯 했다.
그러나 외부 인사가 맡기로 한 비상대책위원장에 정진석 원내대표가 내정되면서 '혁신 비대위'를 요구해 온 비박계가 반발하는 등 균열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정 원내대표가 이혜훈·김영우·홍일표·김세연 당선인 등 비박계 중심으로 비대위를 꾸리고 혁신위원장에도 비박계인 김용태 의원을 내정하자 이번에는 친박계가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친박계 초·재선 당선자 20명은 지난 16일 기자회견을 갖고 "비대위원 및 혁신위원장 인선은 원점 재검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내에서는 친박계가 비대위·혁신위 인선안을 의결할 상임전국위원회·전국위원회 불참을 계획하고 있다는 말이 돌았다.
이 같은 시나리오는 현실이 됐다. 17일 오후로 예정된 상임전국위원회·전국위원회는 친박계의 불참으로 무산됐다. 정 원내대표는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지 않겠다고 했고, 김 의원은 혁신위원장직에서 물러났다.
◆폭발한 계파 갈등, 속내는 당권·대권
친박계의 집단행동은 표면적으로 비대위·혁신위 인선을 겨냥한 것으로 보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당권·대권 노림수가 깔려 있다는 게 중론이다. 차기 전당대회와 대선 경선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당헌·당규 개정을 비박계가 주도하게 둘 수 없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핵심은 당권·대권 분리(대선에 출마하고자 하는 자는 대선 1년 6개월 전부터 당직을 맡을 수 없음) 규정 개정 문제다. 당권·대권 분리 규정 완화론은 총선 참패 후 대선 주자 인물난 해소 차원에서 비박계를 중심으로 제기돼 왔다.
반면 친박계는 현행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당권과 대권이 분리돼야 전당대회에서 계파 투표를 통한 당권 장악이 가능하다는 계산에서다. 당권과 대권이 통합될 경우 당 대표 선출에 계파 보다 대권 주자로서의 잠재력이 더 크게 고려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친박계는 비박계 주도 혁신위가 당권·대권 분리 규정을 개정할 공산이 크다고 판단, 비대위·혁신위 구성 자체를 무산시켰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마침 이날 상임전국위·전국위에서는 혁신위에 전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당헌·당규 개정안도 의결할 예정이었다.
비박계의 반발은 예정된 수순이다. 총선 참패 후 당을 전면 쇄신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이들은 비대위·혁신위 무산에 따른 책임을 물으며 친박계를 상대로 거센 공세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최악의 경우 새누리당이 분당 위기로까지 치달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비박계와 쇄신파가 당을 나와 세력화에 나서면서 여권발(發) 정계개편이 현실화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여기에는 최근 독자 세력화를 시사한 정의화 전 국회의장이나 김무성 전 대표의 행보도 변수가 될 전망이다.
윤미숙기자 come2ms@inews24.com 사진 조성우 기자 xconfin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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