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채나기자] 집권 여당 새누리당을 이끌 신임 당 대표에 이정현(3선·전남 순천) 의원이 선출됐다. 20대 총선 당시 '여당의 무덤'으로 여겨지는 호남에서 3선에 성공하며 한국 정치사에 한 획을 그은 그는 보수 정당 역사상 최초의 호남 출신 당 대표라는 기록을 남기며 전무후무한 '이변의 사나이'가 됐다.
전남 곡성 출신인 이정현 신임 대표는 1984년 동국대학교 졸업 후 구용상 전 민주정의당(새누리당 전신) 의원의 비서로 정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민주자유당 공채로 입사해 신한국당, 한나라당을 거치며 오랜 기간 당직자 생활을 했다.
2004년에는 박근혜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 대통령은 이 대표가 17대 총선 당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광주(서구을)에 혈혈단신 출마했던 점을 인상 깊게 보고 먼저 식사 자리를 제안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이 대표는 '호남을 포기해선 안 된다'며 열변을 토했고, 박 대통령은 그를 수석부대변인으로 발탁했다.
이후 이 대표는 현재까지 박 대통령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2007년 박 대통령이 대선 경선에서 패배했을 때는 '대변인 격'으로 곁을 지켰고, 2012년 대선 때 공보단장을 맡아 박 대통령 당선에 기여했다.
이밖에도 이 대표는 박 대통령 당선인 시절 비서실 정무팀장, 청와대 정무수석·홍보수석 등을 맡아 일했다. 그의 별명이 '박근혜의 입'인 이유는 바로 이 같은 이력 때문이다. 당내에서 그는 박 대통령의 의중을 가장 잘 아는 인물로 꼽힐 정도다.
개인적으로는 불모지 호남에서 끈질긴 구애 끝에 '붉은 깃발'을 꽂은 점이 높게 평가된다. 비례대표로 당선된 18대 총선을 제외하고 1995년 제1회 지방선거 광주광역시 시의원, 17대 총선, 19대 총선에서 모두 낙선한 이 대표는 2014년 7.30 재보궐 선거에서 당선되며 영·호남 지역주의를 타파한 상징적인 인물이 됐다.
이 대표가 박 대통령의 최측근임에도 불구, 비박계 좌장격인 김무성 대표 시절 지명직 최고위원에 임명된 것은 이 같은 상징성 때문이다.
이 대표는 20대 총선에서 3선에 성공하며 당 대표 경선 출마를 공언했다. 초반에는 당내 우려섞인 목소리도 있었다. '총선 참패 책임론'이 겨냥한 친박계인데다 당 대표를 맡기엔 선수 면에서 무게감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KBS 보도개입 녹취록' 논란이 불거졌을 때에는 그의 당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관측도 흘러나왔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선택은 '이정현'이었다. 박근혜 정부 임기 후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선 친박계 당 대표가 필요하며, 호남 출신인 이 대표가 당 대표를 맡는다면 총선 참패 책임론도 어느 정도 희석될 것이란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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