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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탄핵·노동법 '원죄' 딛고 당권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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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 전폭 지원…대구 세탁소집 딸 제1야당 대표로

[윤채나기자] 더불어민주당을 이끌 새 당 대표에 추미애(5선·서울 광진을) 의원이 선출됐다. 친노·친문 등 주류 측 지원을 받은 그는 당권 레이스 초반부터 대세론을 이어가며 제1야당 수장 자리를 꿰찼다.

대구의 한 세탁소집 둘째 딸로 태어난 추미애 신임 대표는 경북여고와 한양대 법대를 졸업하고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판사로 활동하던 그는 1995년 당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의 눈에 띄어 정계에 입문했다.

38세 젊은 나이에 새정치국민회의 부대변인 직을 맡게 된 추 대표에게는 '최초의 여성 부대변인' '최초의 판사 출산 야당 정치인' 등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같은 해 치러진 15대 총선에서는 서울 광진을에 출마해 당선되며 '차세대 여성 지도자'로 부상했다.

1997년 대선 때는 김대중 후보 유세단장을 맡았다. 추 대표는 자신의 고향이지만 반(反)호남 정서가 강했던 대구에서 꿋꿋하게 지원 유세를 펼쳤다. 이 때 얻은 별명이 '추다르크'다.

2002년 대선에선 노무현 후보의 '국민참여운동본부 공동본부장'을 맡는 등 노무현 전 대통령과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2003년 노 전 대통령 당선자 시절 특사로 미국과 일본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의 대북송금 특검을 수용, 열린우리당 창당 등을 거치며 관계에 금이 갔다. 급기야 추 대표는 2004년 노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섰다. 결국 탄핵안은 부결됐고, 추 대표는 속죄의 의미로 '삼보일배'를 했지만 역풍을 맞아 17대 총선에서 낙선했다.

이후 미국 유학길에 올랐던 추 대표는 2008년 18대 총선에서 재기에 성공했지만, 2009년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시절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의원들과 단독 처리한 '노동조합 및 노조관계조정법 개정안'으로 또 한 번 홍역을 치렀다.

추 대표가 '사용자가 동의하는 경우 산별노조의 교섭권을 보장한다'는 내용의 개정안을 내놓자 민주당 등 야당은 산별노조의 교섭권을 무력화한 '노동개악'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당내에서는 징계까지 논의됐다.

탄핵과 노조법, 이 두 사건으로 추 대표의 당내 입지는 크게 위축됐다. 정치적 침체기를 겪은 그는 2012년 18대 대선에서 대통령 후보로 나선 문재인 전 대표를 도우면서 주류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시작했다. 2015년 2.8 전당대회에서도 추 대표는 문 전 대표를 도왔고, '문제인 지도부'에서 최고위원을 지냈다.

전당대회 과정에서도 탄핵과 노조법은 추 대표에게 꼬리표와 같았다. 추 대표는 "노 전 대통령에게 진 빚, 당 대표가 돼 대선 승리로 갚겠다"며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주류는 그런 추 대표에게 힘을 실어줬다.

윤채나기자 come2ms@inews24.com 사진 조성우 기자 xconfin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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