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한얼 기자] 국내 대표 에틸렌 생산 기업인 여천NCC가 부도 위험에 처하는 등 석유화학(석화) 산업 전체가 구조적 위기에 빠져 있지만 새 정부 들어서도 석유화학 지원 대책이 후순위로 밀리는 듯해 업계 볼멘소리가 커지고 있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석화 4사(LG화학, 한화솔루션, 롯데케미칼, 금호석유화학)의 올해 2분기 합산 영업손실액은 3169억원으로 지난 1분기(1537억원)보다 적자 규모가 두 배 넘게 확대됐다. 나프타 분해설비(NCC)를 보유하지 않은 금호석유화학만 유일하게 흑자를 기록했지만 영업이익은 46% 줄었다.
석유화학 업계는 글로벌 경기 둔화와 중국의 저가 공세로 매출과 이익이 모두 급감한 상태다. 특히 나프타 분해를 통한 범용 제품은 수요 감소와 판매 가격 하락이 겹치며 채산성이 무너졌다.
국내 대표 에틸렌 생산 기업인 여천 NCC는 부도 위험에까지 내몰리면서 석화업계의 불황은 이미 위험 수위를 넘어갔다는 게 업계 안팎의 평가다.
위기가 심화하고 있지만 정부가 AI 등 신수종 산업에 집중한 나머지 석화 산업에 대한 정책적 조력을 방기하고 있다는 볼멘 소리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AI를 비롯한 미래 산업 육성이 중요한 것은 맞지만, 기존 주력 산업을 방치하면 향후 국가 제조업 생태계 전체가 흔들리게 돼 수출 전선에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미래 산업을 육성해야 하는 데에는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돼 있지만 제조 산업의 흥망이 촌각을 다투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의 정책적 조력이 한 쪽으로만 편향돼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출범 초부터 AI를 국가 핵심 전략 산업으로 규정하고 예산과 규제 완화를 약속한 바 있다. 대통령 직속 AI 전략위원회 출범은 물론 대규모 투자 인센티브 제공 등 전방위적 지원을 연이어 내놓고 있다.
반면 정부가 올해 내놓은 석화 산업 부양을 위한 대책은 사실상 전무하다.
석화 업계가 기대를 걸고 있는 건 정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 이후 나올 후속 대책이지만 당초 상반기 발표에서 차일 피일 미뤄졌고 이르면 이달 말 발표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다만 석화업계가 줄곧 요청해왔던 공정거래법상 기업 규제 완화, 세제혜택 확대 등의 안이 실제 담길지는 미지수다.
업계 안팎에서는 이번 대책 발표가 늦어질수록 석화업계가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일부 기업은 이미 가동률을 60~70% 수준으로 낮추고 비핵심 자산 매각 등 손실 최소화에 나섰지만,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극단적인 상황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현재 정부의 산업 정책은 균형감을 잃었을 뿐 아니라 시각 자체도 왜곡돼 있다"며 "화학 산업은 그간 국가 경제를 떠받쳐 온 기간산업인데, 이 기반이 붕괴하면 경제 전반은 물론 반도체와 조선 등 연관 산업까지 연쇄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한얼 기자(eol@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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