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윤지혜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가습기 살균제 참사와 관련해 사과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지 한 달이 지났으나, 구체적인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피해자들은 김은경 환경부 장관도 취임한 만큼 대통령 사과 및 재발방지책 마련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5일 환경부와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가피모)에 따르면 정부와 피해자 가족들은 지난 한 달간 3~4차례 만나 정부 사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 다만 보상과 예산 등 재발방지책을 마련하는데 여러 부처 간 협업이 필요하다보니 실무적 어려움이 따른다는 설명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대통령과 정부 관계자들이 피해자들에게 '죄송하다' 입으로만 사과하는 것이 아니라 보상체계 변경이나 예산 확충 등 구체적인 실행약속까지 마련하려면 환경부 혼자 할 수 없다"며 "관계부처에 의견을 돌리고 회의를 진행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로드맵이 확정되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과 공유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어 "관계부처의 정책적인 결단이 필요해 언제까지 마무리하겠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며 "장관님이 취임한 만큼 힘을 받을 여지는 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강찬호 가피모 대표는 "환경부 장관이 임명돼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태 해결에 대한 원칙이나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진 다음 정부 사과도 진행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오래 시간을 끌 사안은 아니기 때문에 (정부 사과도) 곧 진행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진정한 사과 위해서는 구제방식·피해보상 개선돼야"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 대한 정부 사과를 넘어 진정한 피해보상책과 재발방지책이 마련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구상권을 전제로 한 구제 방식이 전면 개선돼야 한다. 그동안은 가해기업에 비용을 돌려받을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피해자를 지원할 수 있었기 때문에 피해 구제에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다. 이 때문에 대다수의 피해자들이 3단계(가능성 낮음)·4단계(가능성 거의 없음)로 분류돼 적절한 보상을 받지도 못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피해 판정이 끝난 1~3차 신고자 1천282명 중 276명만 1·2단계로 분류돼 약 1천여명의 피해자가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했다, 정부에 피해 접수를 하지 못했거나 피해 판정이 완료되지 않은 사람들까지 더하면 사각지대에 높인 피해자 수는 더 많아질 전망이다.
실제 환경보건시민센터는 "가습기 살균제 사용 후 병원에 다닌 피해자면 최소 30만~50만명에 달한다"며 "현재 정부가 추산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 신청자는 5천615명에 불과해 98~99%의 피해자들이 외면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건강 피해로 폐 질환 한 가지만 인정하는 점도 개선돼야 한다. 폐 질환자 중에서도 폐를 찍은 영상사진이 뿌옇게 보이는 '간유리 음영' 현상과 급성 폐 섬유화가 나타났을 때만 피해가 인정돼 천식·비염은 물론 폐렴·폐암 등도 구제 대상에서 제외됐었다. 이에 대해 피해자들은 개별 질환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피해 판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김은경 환경부 장관은 피해 판정 및 보상 체계 개선에 긍정적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김 장관은 후보 시절 진행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피해 판정과 보상과 관련해 아직 과제가 많다"며 "3∼4등급으로 분류된 분들에 대한 조속한 진단이 필요하고, 아직 (피해구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범위도 추가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제 방식에 대해서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를 구제하는데 정부도 기업과 같이 재정을 분담해야 한다"며 "특별법의 특별피해구제계정에서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가피모는 무엇보다 '정부 주도로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강 대표는 "대통령을 만나는 자리에서 세부적인 문제를 해결할 순 없지만, 정부가 최대한 바른 시간 내에 가장 바람직한 방형으로 문제를 풀겠다는 진심을 선명하게 보여줘야 한다"며 "정부가 주도적으로 해결하려는 자세를 취해야 검찰 수사를 피해기 위해 소극적으로 대처했던 가해기업도 사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윤지혜기자 ji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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