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윤지혜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7년 만에 가습기살균제 가해기업의 허위·과장광고에 대한 제재를 내렸지만 피해자들은 '솜방망이 처벌'에 불과하다고 입을 모았다. 과징금 규모가 대폭 축소된 데다, 이번에도 SK케미칼에 대한 일부 조사가 누락됐다는 비판이다.
12일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과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는 서울 광화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정위가 SK케미칼과 애경산업에 대한 형사고발 결정을 내려 늦었지만 다행"이라면서도 "공정위 결정은 여전히 미흡한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오전 공정위는 SK케미칼·애경산업·이마트가 CMIT/MIT 성분의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판매하면서 인체 위해성과 관련된 정보를 은폐·누락하고 안전한 제품인 것처럼 허위 표시·광고하는 등 표시광고법을 위반했다며 1억3천400만원의 과징금과 시정명령을 내렸다. 2011년 첫 조사 후 7년만에 이뤄진 조치다.
또 공정위는 SK케미칼과 홍지호·김창근 전 대표, 애경과 안용찬·고광현 전 대표를 각각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이마트는 공소시효가 지나 고발 대상에서 제외됐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소비자정책 주무기관으로서 국민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막중한 소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점에서 다시 한 번 통렬히 반성하며 특히 피해자분들께 깊은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앞으로 공정위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법상 허용하는 관련 자료를 소송 등 피해구제 절차를 진행하시는 분들께 충실히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공정위 조사와 관련해 여전히 석연치 않다는 입장이다. 특히 과장금 수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공정위가 부과한 기업별 과징금은 SK케미칼이 3천900만원, 애경이 8천800만원, 이마트가 700만원으로, 과징금이 수백억원에 달할 것이란 전망보다는 규모가 대폭 축소됐다.
피해자들은 "2016년 7월경에 작성돼 헌법재판에 제출된 공정위 사무처장의 심사보고서에 따르면 애경은 81억원, SK케미칼은 250억원 한도에서 과징금을 부과하는 내용이 담겨 있는데 오늘 공정위가 발표한 과징금은 해당 보고서의 0.5%에 불과하다. 현 정부에서도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대충 덮으려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꼬집었다.
공정위는 표시광고법상 허용되는 최대 과징금 부과율을 적용했으나 3사 합산 총 매출액 규모가 작아 과징금 규모도 줄었다는 입장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가습기살균제 제품 1개당 판매단가는 3천~4천원 수준이어서 제품출시일인 2002년부터 산정하더라도 3사 합산 총 매출액 규모는 약 74억원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강은 가습기살균제천식피해자모임 대표는 "가습기살균제 사용후 죽거나 평생 호흡기를 달고 사람야 하는 사람이 많은데, 어떻게 사람 목숨이 1억원이 될 수 있나"라며 "그동안 가해기업은 피해사실을 인정도 안하고 피해자들에게 사과도 안했다. 가해기업이 피해자를 찾아야지 아픈 피해자가 이 찬바람에 나와 울부짖는 이 상황이 억울하다"고 외쳤다.
이들은 공정위가 가해기업에 대해 '봐주기 조사'를 진행했다고도 비판했다. 특히 SK케미칼이 자사제품과 사보에 '인체 무해하다'는 내용을 기재했음에도 이에 대한 표시광고법 위반 혐의는 조사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실조사로 피해 키운 공정위…심의 중단 원인 밝혀야"
피해자들은 지난 두 차례의 부실조사로 가해기업에 면죄부를 주고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의 고통을 키운 공정위에 대해서도 날을 세웠다.
지난 2011년 피해자들은 가습기살균제를 '인체에 무해한 안전한 제품'이라고 광고한 SK케미칼과 애경을 부당표시광고로 신고했으나 공정위는 '지나치게 부풀렸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환경부가 이들 제품으로 인한 피해를 인정한 2016년에도 공정위는 공소시효가 지났고 CMIT/MIT에 대한 인체 위해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며 돌연 심의절차를 종료했다.
장동엽 참여연대 선임간사는 "2016년 8월에 왜 심의가 종료됐는지 전혀 밝혀진 바 없다"며 "대체 무엇 때문에 공정위가 SK케미칼과 애경이 주장했던 바를 그대로 받아들이며 심의를 종료했는지 밝혀지지 않는다면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에서 공정위를 조사할 수밖에 없다. 당시 심의위원들에 대해 직무유기와 직권남용으로 검찰에 고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순복 한국여성소비자연합 사무처장은 "공정위는 소비자 안전 보호 문제를 책임지고 정책을 수립해야 하는 기관이지만 그동안 제대로 된 업무 수행을 하지 않았다"며 "표시광고법 안에는 표시광고법 위반 혐의를 조사하는 기간 중 위험한 사항에 대해 판매를 중지할 수 있는 '임시중지명령'이 있는데, 1996년부터 2016년까지 공정위가 이를 시행한 건 단 2건"이라고 말했다.
이어 "2002년부터 가습기살균제 논란이 지속적으로 발생한 시기에도 공정위는 가습기살균제 제품에 대해 표시광고법 위반이나 임시중지명령을 내릴 어떤 의지도 없었다"며 "가습기살균제 피해신고 접수도 한국소비자원이 아니라 일반인에겐 생소한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게 이관해 피해자들을 적극적으로 찾아내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공정위 vs SK케미칼·애경, 공소시효 두고 법정 공방 예고
공정위가 7년 만에 SK케미칼과 애경을 검찰 고발한 가운데, 향후 공정위와 기업 간 법정 공방이 이뤄질 가능성도 높다. SK케미칼과 애경은 가습기살균제 판매가 2011년 8월 30일 종료돼 행정 처분시효가 2016년 8월 30일에 끝났다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정위 역시 2016년 당시 SK케미칼과 애경의 공소시효 만료를 인정한 바 있다.
그러나 공정위는 이번 재조사 과정에서 2013년 4월 2일 SK케미칼이 제조하고 애경이 판매한 '홈클리닉 가습기메이트' 제품이 판매된 기록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를 표시·광고행위 종료일로 보면 공소시효는 2018년 4월 2일까지 늘어날 수 있다. 다만 공정위가 확보한 자료가 소수여서 기업 측이 반박공세를 할 여지도 있다.
이에 대해 애경 관계자는 "아직 전원회의 의결서를 받지 못했다. 의결서를 받아본 후에 회사 입장을 정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SK케미칼 관계자는 "이번 공정위의 심의절차에서 지적된 내용을 깊히 새기겠다"며 "아직 의결서를 받지 못해 향후 계획에 대해 밝히기는 어려우나 정해진 절차에 성실히 임할 것"이라고 했다.
한편, 지난 9일 기준으로 가습기살균제 피해 신고자 수는 5천988명으로, 이중 1천308명이 사망했다.
윤지혜기자 ji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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