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허인혜 기자] 글로벌 보험업계의 새로운 먹거리인 헬스케어가 우리나라에서만 규제에 막혀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 의료계와의 분쟁을 해소해달라는 보험업계의 요구에도 명확한 유권해석이 나오지 않은 탓이다.
그 사이 해외 보험사들의 헬스케어 발전은 우리나라를 멀찌감치 따돌렸다. 신산업 규제 샌드박스에 헬스케어와 연계 보험산업이 포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0년을 기다렸는데" '알아서 하라'는 복지부에 헬스케어 지지부진
신산업과 신기술 분야에 규제를 면제, 유예해주는 '규제 샌드박스' 제도와 금융혁신법 시행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보험업 헬스케어에도 샌드박스가 도입돼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보험업계와 의료계는 헬스케어 보험에서 사용 가능한 의료 기록의 범주와 연계 상품의 폭 등을 두고 첨예한 갈등을 벌여왔다. 현행 의료법에서는 보험사가 의료법인과 제휴를 맺어야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했다. 허용하는 분야도 국소적인 7가지 사업뿐이다.
2017년 11월 금융당국이 건강증진보험 가이드라인을 내놓았지만 보험업계와 의료계의 논쟁을 봉합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비판이다. 신사업별로 문의를 하더라도 '의료법상에 저촉되지 않는 한도에서 사업을 진행하라'는 답이 돌아온다. 10년을 기다렸지만 의료법 제27조의 틀을 아직까지 깨지 못한 셈이다.
유권해석이 모호하니 신상품 출시에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보험업계가 최근 출시한 헬스케어 상품은 걸음수나 금연 연계 등 기초적인 구조에 그친다. 운동을 하거나 담배를 끊으면 보험료를 깎아준다는 단순한 구조로 모객 매력도가 떨어진다. 판매율도 참담한 수준이다. 건강증진형 보험상품의 월간 판매실적은 평균 3억원 내외로 미미하다.
◆해외선 헬스케어 날개 달았는데…국내 헬스케어 '코리아 패싱' 확산
그 사이 우리나라 헬스케어 사업자는 해외로 눈을 돌렸고, 해외 사업자는 한국행을 기피하는 '코리아 패싱'이 심화됐다.
국내 헬스케어 사업자인 A사는 보험가입자의 유전자 등 생체정보를 해외에 보내 질병 가능성을 분석하는 신사업을 구상했다. 해외에서는 이미 상용화가 가능할 만큼 발전한 기술이다. 하지만 의료법과 개인정보보호법, 생명윤리법 등에 막히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사업을 펼치지 못했다.
외국계 보험사들도 국내에서 사업을 펼치기에는 규제의 벽이 지나치게 높다고 하소연한다. 시그나 그룹은 전 세계에 보험과 헬스케어 사업을 운영하는 다국적 기업으로, 해외 헬스케어 산업에서는 선봉장 역할을 도맡는다. 시그나 그룹의 한국 사업체가 라이나생명이다. 시그나 그룹이 유수의 헬스케어 기술을 갖췄고 라이나생명이 국내 플랫폼으로 기능할 수 있지만 시너지 효과는 좀처럼 나지 않는다. 역시 헬스케어 장벽 탓이다.
그 사이 해외 헬스케어 사업은 날개를 달았다. 2015년을 기준으로 전세계 시장규모만 790억달러에 달한다. 남아공의 디스커버리 사는 가입자 건강증진 활동 권유 프로그램인 '바이탈리티'로 영국의 푸르덴셜, 중국의 평안보험과 국제 파트너십을 맺었다. 미국의 오스카 헬스는 인슈어테크를 접목해 헬스케어 상품의 단가를 낮췄다. 일본의 다이이치 생명도 선례로 꼽힌다.
최근에는 웨어러블 기기뿐 아니라 빅데이터와 VR(Virtual Reality, 가상현실)과도 융합한 헬스케어가 등장하고 있다. 환자가 의사를 찾아가 진단 받는 전통적인 의료 행위가 뒤바뀔 만한 변화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신용길 생명보험협회장이 올해를 헬스케어 발전의 원년으로 삼았으니 정확한 유권해석이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다"며 "의료산업을 전면 개방하라는 요구가 아니라 얼마나 범주를 넓혀도 되는지를 명확히 해달라는 요구"라고 말했다.
허인혜 기자 freesia@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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