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한국경제 버팀목인 삼성이 총수 부재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은 후 곳곳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 나오고 있다.
새해 초부터 국내 대기업들의 글로벌 투자, 인수·합병(M&A) 소식이 이어지고 있는 반면, 선장을 잃은 삼성전자가 미래 성장 동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게 돼 경제계의 시름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더욱이 삼성이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국가경쟁력마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감마저 낳고 있다.
19일 재계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 상위 10대 기업들의 영업이익에서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년 동기 대비 5.7%p 오른 68.6%에 달했다. 반도체·가전 덕분에 영업이익이 8조 원 늘어난 삼성전자를 제외한 나머지 기업들의 실적이 제자리걸음이거나 역주행하며 이 같은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특히 삼성전자를 제외한 나머지 9개 기업의 영업이익을 다 합쳐도 삼성전자 영업이익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출 2위인 현대차 영업이익이 삼성전자의 12분의 1 수준인 2조8천635억 원(추정치)이라는 점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났다.
◆한국경제 버팀목 삼성…경제계 "이재용 부재에 악영향" 경고
지난해 10대 그룹의 영업이익이 20%가량 늘어난 것으로 보이는 것도 삼성전자 덕분인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가 지난 8일 발표한 지난해 잠정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29.5% 늘어난 35조9천500억 원이었다는 점 때문에 착시 효과가 벌어진 것이다. 결국 10대 기업의 실적 성적표는 삼성전자에 의해 좌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국내 투자에서도 삼성전자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CEO스코어가 공정거래위원회 지정 64개 대기업집단 내 분기보고서를 제출하는 362개사를 조사한 결과 지난해 3분기 대기업 누적 투자액은 63조2천153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0.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룹별로 보면 가장 투자를 많이한 곳은 삼성으로, 지난해 3분기까지 총 22조3천310억 원을 투자해 전년(14조6천450억 원)보다 52.5%(7조6천860억원) 증가했다. 이는 전체 대기업 투자액의 3분의 1가량에 해당한다. 삼성전자를 제외한 대기업 집단 전체 투자액은 전년 동기 대비 4.5% 감소한 42조3천541억 원을 기록했다.
투자뿐 아니라 국내 증시에도 삼성전자가 미치는 영향력은 상당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8일 실형이 선고돼 법정구속됐다는 소식에 삼성전자를 비롯한 계열사들의 주가가 동반 하락하면서 국내 주식시장에도 적잖은 타격을 줬다. 이날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71.97포인트(2.33%) 내린 3천13.93에 거래를 마쳤다.
삼성전자가 나라 경제에 보탬이 된 정도가 4대 기업 중 나머지의 공헌도를 모두 더한 것보다 크다는 분석도 나왔다. 한국기업공헌평가원에 따르면 지난 2019년 한국 기업들의 국가 경제 공헌 정도를 지표로 계산한 결과 삼성전자가 166점으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삼성전자의 국가 경제 공헌도는 2~4위 기업을 모두 더한 점수보다 높았다. 2위는 SK하이닉스, 3위는 현대자동차, 4위와 5위는 LG전자·기아자동차였다.
특히 삼성전자는 재무실적, 수출실적 등 평가항목에서 경제 기여도가 가장 컸다. 2019년에 삼성전자가 벌어들인 외화는 134조5천억 원으로, 2위인 한국전력공사(39조 원)의 3배가 넘었다. 사회공헌 집행 금액도 삼성전자가 2천880억 원으로 2위인 KT(870억 원)의 3배 이상을 기록했다.
기업집단별 국가 경제 공헌도 역시 삼성이 2위인 SK(70점)의 2배가 넘는 151점을 기록했다. 3~5위는 현대자동차, LG, 롯데 순이었다.
재계 관계자는 "세계적 기업 반열에 오른 삼성전자가 국가 경제에 크게 기여했다는 객관적인 수치는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며 "이로 인해 해외에선 삼성전자 위기론이 한국 경제 위기론으로 확산되고 시장을 뒤흔드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재계에선 이 부회장에 대한 실형 선고가 삼성뿐 아니라 한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이 부회장이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에서 뇌물공여·횡령 등의 혐의로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고 법정구속되자 일부 경제 단체들은 국가 경제에 위기가 닥칠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며 안타까움과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구속 판결이 나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삼성이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위상 등을 고려할 때 이번 판결로 인한 삼성의 경영활동 위축은 개별기업을 넘어 한국경제 전체에도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밝혔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한국 경제에서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막대하다"며 "이 부회장이 실형을 선고 받고 옥살이를 할 수밖에 없어서 이 부회장이 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들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할 것 같아 걱정된다"고 말했다.
경총은 실형을 선고한 이번 판결에 대해 삼성그룹의 경영 공백이 현실화돼 매우 우려스럽다고 강조했다. 또 최근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적 타격, 세계 각국의 자국 산업 보호 중심의 경제정책 가속화 등으로 경제적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큰 상황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의 경영 공백으로 중대한 사업 결정과 투자가 지연됨에 따라 경제·산업 전반에도 악영향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총 관계자는 "다가올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심화될 글로벌 경쟁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우리 글로벌 기업의 적극적인 사업확장과 기술혁신으로 신산업분야 등에서 경쟁력 우위를 확보하는 노력이 절실하다"며 "향후 삼성그룹의 경영 차질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정책적·행정적 배려를 당부한다"고 강조했다.
◆미래 투자 나선 현대차·SK·LG…M&A 동력 잃은 삼성
이 부회장의 재구속으로 삼성은 총수 부재라는 악재를 다시 한 번 맞닥뜨리게 되면서 '경영 시계' 제로 상태에 놓였다. 지난해 코로나19 사태 와중에도 고군분투해 왔는데 자칫 리더십 공백이 글로벌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까 초조해 하는 모습도 역력하다.
삼성 내부에선 그 동안 '총수 경영'에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 부회장의 부재를 막고자 안간힘을 썼다. 특히 권오현 삼성전자 상임고문은 지난해 7월 방송된 사내방송 인터뷰에서 "과거 삼성이 일본 반도체 업체들을 추월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의 독특한 기업 문화인 '총수 경영'에 따른 경쟁우위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삼성은 이 부회장을 둘러싼 사법 리스크 영향으로 지난 2016년 하만 인수 이후 대형 인수합병(M&A)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데다 '뉴 삼성'을 구체화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던 상태다. 총수 부재 상황에 또 다시 놓이게 되면서 당분간 총수의 결단이 필요한 대규모 투자나 M&A(인수합병)은 쉽지 않아져 미래 먹거리 발굴에 차질을 빚게 됐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일로 대형 M&A는 물론, 180조 원 규모의 투자·고용 계획, 133조 원 규모의 시스템반도체 사업 육성 방안 등 오너의 리더십과 결단이 필요한 사업 구상은 당분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이 부회장의 글로벌 네트워크 위축도 불가피해져 향후 삼성이 글로벌 투자나 M&A를 추진할 때 대외신인도 평가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크다"고 밝혔다.
반면 4대 그룹 중 삼성을 제외한 현대차, SK, LG의 움직임은 활발하다. 특히 현대차그룹은 지난 2018년 정의선 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후 M&A에 적극 나서 재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달 1조 원을 들여 미국 첨단 로봇기업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 80%를 인수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미래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한 초석을 마련하기 위한 행보로 해석된다.
SK그룹도 미래 먹거리 발굴에 적극적이다. 특히 지난해 SK하이닉스가 90억 달러(약 10조 원)를 들여 미국 인텔 낸드플래시 사업을 사들이면서 단숨에 D램에 이어 낸드 부문에서 글로벌 2위 기업으로 우뚝섰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이 같은 결정이 반도체 사업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 주효했다는 평가다.
SK는 글로벌 수소 사업에도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이를 위해 최근 미국 플러그파워사의 지분 9.9%를 확보, 최대 주주로 올라섰다. SK와 SK E&S가 각각 8천억 원을 출자해 약 1조6천억 원(15억 달러)을 공동 투자했다.
LG전자도 경쟁력 높은 기업을 사들이는 데 힘을 쏟고 있다. 특히 지난 2018년 6월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취임한 후 전장·로봇 등을 신성장동력으로 삼고 관련 기업 인수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달 세계 3위 자동차 부품업체인 캐나다 마그나와 합작법인을 세우기로 하고, 약 1조4천억 원을 들여 오스트리아 차량용 헤드램프 기업 ZKW를 인수한 게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오는 27일에는 글로벌 소프트웨어 기업 룩소프트와 조인트벤처 '알루토(Alluto)'도 출범시켜 전장사업 강화에 더 속도를 낸다.
글로벌 기업들의 M&A 움직임도 활발하다. 업계에 따르면 작년 4분기에만 1조3천억 달러(약 1천413조 원) 규모의 M&A 거래가 성사됐다. 엔비디아의 ARM 인수(345억 달러), AMD의 자일링스 인수(327억 달러) 등 반도체, 바이오와 같은 첨단산업에서의 M&A가 주를 이뤘다.
또 파운드리 시장 업계 1위인 대만 TSMC는 삼성전자와 격차를 벌이기 위해 대규모 투자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120억 달러(약 14조7천800억 원)을 들여 미국 애리조나에 5나노미터 공정 파운드리 공장을 짓겠다는 발표를 한 후 최근 4분기 실적 발표에선 올해 250억~280억 달러(약 27조~31조 원)를 설비 투자에 쓸 것이란 계획을 밝혔다. 반면 삼성전자는 TSMC 투자액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치는 12조 원을 비메모리 사업에 투자할 것으로 업계에선 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코로나 사태 속에서도 기회를 찾아 차세대 성장동력을 확보하고 시장 선점을 위해 M&A를 하는 기업들이 많아졌다"며 "국내 주요 대기업뿐 아니라 글로벌 기업들이 M&A 및 대규모 투자 등을 통해 적극 미래를 준비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삼성은 오너의 사법 리스크에 발이 묶여 있다"고 밝혔다.
이어 "삼성이 그동안 스마트폰·바이오·가전 등에서도 글로벌 1위를 두고 경쟁력 확보를 위해 각종 투자를 진행했지만 이번 일로 난관에 부딪혔다"며 "이 부회장이 직접 챙겨 온 2030년 시스템반도체 세계 1위 목표(반도체 비전 2030)나 인공지능(AI), 5세대(5G) 이동통신, 전장 부품용 반도체, 바이오 등 핵심 신성장사업들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높아진 만큼 국가 경제 측면에서도 상당한 손해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유미 기자 sweet@inews24.com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