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최근 복권 이후 경영 보폭을 넓혀가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국내 계열사 현장 경영에 이어 해외 첫 행선지로 유럽이나 미국을 택할 것으로 점쳐진다. 당초 상반기 내 진행될 예정이었던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 제2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 착공식이 조만간 진행될 것으로 보이는 데다 다음달 윤석열 대통령의 UN 총회 경제사절단 명단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어서다.
31일 재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다음달 2일 재판 출석 후 12일간 추석 연휴에 따른 법원 휴정기를 맞아 해외 사업장에 방문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매주 목요일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혐의 재판과 3주에 한 번 금요일에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그러나 다음달 9~12일 추석 연휴를 맞아 법원이 재판 일정을 잡지 않아 2일 재판 출석 후 15일 재판까지 12일간 자유롭게 경영 활동을 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재계에선 미국을 포함해 유럽, 아시아, 중남미 등 다양한 지역을 이 부회장의 해외 출장 예정지로 예측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과거에도 이 부회장이 설, 추석 등 명절 연휴 기간을 이용해 브라질, 중국 등 해외 사업장에 들러 임직원들을 격려하고 사업을 점검하는 현장 경영에 나섰다"며 "이번에도 재판이 없어 해외 출장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진 만큼 이 기간을 활용해 글로벌 경영 행보에 속도를 낼 듯 하다"고 밝혔다.
현재 이 부회장이 복권 후 가장 먼저 찾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은 미국이다. 텍사스주 테일러시 제2파운드리 공장 착공식이 주요 인사들의 일정 조율 실패로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지만, 삼성전자 측의 일정상 더 이상 연기하기 어려운 상태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미국 테일러시 파운드리 공장은 총 170억 달러(약 21조원)가 투입된다. 오는 2024년 하반기 가동을 목표로 약 500만㎡(150만 평) 규모로 조성되며 5G, HPC(고성능 컴퓨팅), AI(인공지능) 등 분야의 첨단 시스템 반도체 제품이 생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공장 부지는 땅 고르기 작업이 거의 완료된 상태로, 내부 도로와 주차장 포장 작업이 진행 중이다. 작업자들은 공장 주위에 보안용 펜스를 설치하는 작업도 했다. 테일러 공장은 삼성 텍사스 공장보다 약 4배 넓다.
삼성전자 오스틴 공장 측은 "테일러 공장은 부지 평탄화 작업이 거의 완료됐다"며 "지하 시설과 건물 기초 공사는 6월에 시작됐다"고 밝혔다. 이어 "(테일러 공장은) 2024년 사업 개시를 목표로 2022년 착공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삼성전자는 미국 테일러 파운드리 공장 투자 계획을 공식 발표하며 올해 상반기에 공장을 착공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러나 테일러 파운드리 공장이 갖는 의미가 큰 만큼 텍사스주 정관계 인사들뿐 아니라 조 바이든 대통령,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이 착공식에 참석할 수 있도록 일정을 조율했지만 쉽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내부에서 올 상반기 중 착공식을 진행하기가 어렵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 부회장이 6월까진 해외 출장을 가려면 법무부 승인을 거쳐야 했던 상황 때문에 이동이 어려웠다는 점도 착공식 일정을 미루게 된 원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최근 복권되면서 이 같은 제약이 없어진데다 12일간 재판도 받지 않게 되면서 연기됐던 착공식을 다음달 초 진행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테일러시 파운드리 공장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반도체법에 서명하면서 세제혜택이 확정됐다"며 "착공식 준비도 마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어 "공장 착공식은 삼성전자가 미래 성장을 위해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대대적으로 알릴 수 있는 행사인 만큼 건너뛸 수는 없는 일"이라며 "착공식 참석뿐 아니라 최근 반도체 공급망을 둘러싼 미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점에서도 이 부회장의 미국 방문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이 다음달 19~20일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제77차 유엔총회 참석할 예정이라는 점도 이 부회장의 미국행에 힘이 실린다. 윤 대통령이 유엔총회에 참석하는 것은 취임 후 처음으로, 이곳에서 연설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바이든 대통령 역시 참석할 예정인 만큼 지난 5월에 이어 두 번째 한미 정상회담이 진행될 지도 관심을 끈다.
이에 따라 윤 대통령과 함께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인 삼성도 경제사절단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아 이 부회장이 동행할 것이란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이 부회장이 함께할 경우 이 자리를 통해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 활동뿐 아니라 '칩4' 이슈 대응에도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한덕수 국무총리의 갑작스런 발언 때문에 미국에 앞서 유럽에 먼저 방문할 가능성도 있다. 한 총리는 전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 부회장이 추석에 임박해서 구라파(유럽) 쪽에 출장을 가서 몇 나라를 돌면서 부산엑스포 유치 지원 작업을 해주실 것 같다"며 "현대차도 하고 있고, 롯데도, LG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그러나 삼성전자 측은 이 부회장의 출장 일정에 대해 아직까지 결정된 것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정부 고위 인사인 총리가 대기업 총수의 일정을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례적"이라면서도 "정부에서 이를 기업들에게 강요하는 듯한 모습으로 비춰지면서 박근혜 정부 때의 '국정농단' 사건을 떠올리게 되는 듯 하다"고 일침했다.
일각에선 이 부회장이 미국, 유럽, 중동이 아닌 베트남 등 아시아 지역이나 남미 등의 지역을 찾을 것이란 관측도 내놨다. 최근 1년간 방문하지 않은 곳을 찾지 않겠냐는 이유에서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해외 출장지를 두고 많은 얘기들이 나오고 있지만, 어디를 간다고 해도 이 부회장이 현지 생산기지를 찾아 중장기 전략과 글로벌 공급망을 점검하고 직원들과 소통하려는 움직임은 변함 없을 것"이라며 "현장 경영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들은 것을 바탕으로 올 연말 회장 취임 때 대대적인 조직 개편과 함께 '뉴 삼성' 비전에 맞춘 중요한 메시지를 내놓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장유미 기자(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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