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용기자] 최근 IT업계의 핫 이슈는 단연 휴렛팩커드(HP) 관련 뉴스다. 9개월만에 경질된 레오 아포테커 전 최고경영자(CEO) 소식부터 PC사업 부문 분사설, '웹OS' 매각설, 오라클로의 피인수설 등 소재도 다양하다.
전 세계를 호령하던 '거인' HP는 온데간데 없고, 위기설만 나돌고 있다.
◆피인수설에 시달리는 HP
30일(현지시간) 벤처비트 등 주요 외신들은 HP가 현재 모바일 운영체제(OS) 자회사인 '팜'을 정리하려 한다며 아마존이 유력 인수 업체로 떠오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마존이 최근 선보인 199달러 짜리 태블릿 '킨들 파이어'가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면서, 아마존이 팜의 웹OS를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업체로 꼽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구글 안드로이드를 OS로 활용하고 있는 킨들 파이어가 뛰어난 멀티태스킹 능력을 자랑하는 웹OS와 결합할 경우, 안드로이드 태블릿과 차별화가 가능해진다.
팜의 전 CEO였던 존 루빈스타인이 아마존의 이사회에 합류한 것도 아마존으로의 피인수설에 신빙성을 더한다고 벤처비트는 분석했다.
모바일OS 사업 포기와 함께 화제가 됐던 HP의 PC사업 부문 분사 발표도 CEO 교체 이후 방향을 잃었다.
아포테커 전 HP CEO는 자사 매출의 30% 이상을 차지하던 PC사업을 분리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영국계 기업용 검색 솔루션 업체인 오토노미를 인수하겠다고 밝혔다. 이익률이 높은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경쟁력을 강화해나가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HP 이사회는 지난달 22일 아포테커를 실적 악화 등의 이유로 취임 9개월 만에 전격 경질, 이베이 출신 맥 휘트먼을 새 CEO로 선임했다.
휘트먼 신임 CEO 취임 이후 레이 레인 HP 회장은 PC사업 부문을 분리 할 생각이 없다며 "430억달러의 수익을 내는 세계 최고 사업부를 왜 정리할 것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말했다. 휘트먼 CEO 또한 "나는 조금 다른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라며 사실상 PC사업 부문 분사를 재검토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여기에 HP는 피인수설에도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HP가 오토노미를 인수한다고 발표하면서 라이벌 관계에 있는 오라클이 HP 인수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오라클의 현재 CEO인 마크 허드는 지난 2005년부터 5년 간 HP의 CEO를 역임했다.
뉴욕포스트는 최근 HP의 오토노미 인수 발표가 오라클을 자극하고 있다며, "주식시장에는 오라클이 HP를 인수하려 한다는 루머가 나돌고 있다"고 전했다. 포브스 역시 HP의 주가가 계속 하락하고 있는 것과 관련, "래리 엘리슨 오라클 회장이 HP의 주식을 사들여 HP를 인수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HP는 올해 들어 주가가 47%나 급락했다. 시가총액도 700억 달러 수준에서 440억 달러 수준까지 곤두박질 쳤다.
이에 비해 오라클은 시가총액이 1천450억 달러에 달한다. 월스트리드저널(WSJ)에 따르면 오라클의 보유 현금은 170억 달러에 달하며, 여전히 투자 여력이 있다. WSJ는 전통적으로 소프트웨어 업체였던 오라클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서비스 부문을 아우르는 종합 IT기업을 꿈꾸고 있으며, IBM과 대적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글로벌 거인 HP, 어쩌다가...
HP는 1939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에서 빌 휼렛(Bill Hewlett)과 대학동문인 데이비드 패커드(David Packard)가 차고를 빌려 음향발진기를 생산해낸 데서부터 시작됐다.
빌휴렛은 기술 부문, 데이비드 팩커드는 경영 부문을 담당하며 HP는 사업 영역을 컴퓨팅, 인터넷과 인트라넷 솔루션, 서비스 등 첨단정보사업 분야로까지 확장하면서 초우량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1939년 윌리엄 휴렛과 데이비드 팩커드가 538달러로 설립한 HP는 1995년 포브스가 올해의 기업으로 선정하면서 전성기를 맞이했다. 전세계 120여 개국에 600개 이상의 지사를 보유하고 있는 HP는 2010년 기준 매출액 353억4천600만 달러를 글로벌 IT기업이다.
굴지의 기업 HP는 데이비드 팩커드와 빌 휴렛이 각각 1996년 2001년에 사망하면서 부침을 겪기 시작했다.
HP는 칼리 피오리나 CEO 취임 이후 2002년 189억 달러에 컴팩을 인수하면서 부활을 꿈꿨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이후 북미와 유럽을 중심으로 한 PC 성장세와 수익성이 꺾이면서, 사실상 실패한 인수합병 사례로 남게됐다.
피오리나의 뒤를 이어 HP 수장 자리에 오른 마크 허드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통한 비용 절감 노력으로 HP의 수익성을 크게 개선시켰다. 그러나 그는 R&D 분야에 대한 투자를 대폭 줄이면서 회사의 창의성이 퇴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새로 취임한 레오 아포테커는 소프트웨어 업체로의 변신을 꿈꿨다. HP는 지난 2년 동안 3PAR를 비롯한 다수의 스토리지 업체와 아크사이트, 포티파이소프트웨어 등 보안 업체를 대거 인수하면서 통합 솔루션 제공을 강조했다.
그러나 아포테커 취임 이후 HP의 실적은 3분기 연속 하락했으며, 주식도 연일 하락세였다. 그는 팜 인수 1년 만에 웹OS 개발을 중단키로 선언했고, PC사업 부문 분사도 결정했다.
◆휘트먼이 이끄는 HP, 과제는?
따라서 휘트먼은 경쟁 심화에 따라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는 하드웨어 부문의 생존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스마트폰 및 태블릿 등 모바일 기기 열풍에 따른 하드웨어 전략도 새로 짜야 한다.
그러나 휘트먼은 단기적으로는 오토노미 인수를 계속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파이낸셜타임스는 HP가 오토노미 인수를 조만간 마무리 지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오토노미 인수에 대해선 여전히 논란이 많다. 오토노미의 시가총액이 60억 달러 밖에 되지 않는데, 거의 두배에 가까운 금액인 103억 달러를 주고 인수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것도 HP의 인수 발표 이후 주가가 급등했기 때문이지 당초 오토노미의 시가총액은 34억 달러에 불과했다.
휘트먼은 따라서 이같은 시장에서의 논란을 잠재우고 특히 '행동주의 투자자(Activist Investors)'들의 압박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도 고민해야 한다. 오토노미 인수 발표 당시, 번스타인리서치 토니 사코나기 애널리스트는 "행동주의자들이 공격에 나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행동주의 투자자란 이사회 장악 등 경영에 개입해 적극적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주주를 말한다.
WSJ은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HP의 실적 부진과 전략 부재에 대한 비난을 내놓고 있으며, HP 이사회가 CEO를 휘트먼으로 교체한 이후부터는 이같은 분위기가 더욱 거세지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잦은 CEO 교체에 따른 경영 관리 소홀과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사업 전략 부재가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표적이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HP는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향후 경영에 개입할 것을 대비해 골드만삭스를 자문사로 고용했다. 골드만삭스는 올해 초 미국·북유럽 증권거래소 운영업체인 '나스닥OMX'의 'NYSE유로넥스트' 인수를 막는데 도움을 줬다.
김관용기자 kky1441@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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