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기자] 삼성전자와 애플이 특허 전쟁을 시작한지 15일로 딱 1년이 된다.
먼저 공격을 개시한 쪽은 애플이었다. 애플은 지난 2011년 4월15일 미국에서 삼성전자를 대상으로 디자인 특허 및 사용자 인터페이스(UI) 관련 소프트웨어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삼성전자는 같은 날 한국에서 애플을 상대로 맞소송을 제기하고 나섰다.
이렇게 시작한 두 회사 사이의 특허 소송 전쟁은 독일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호주 등 9개국 30여 건으로 확대됐다. 지역만 확대된 게 아니다.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소송 대상 제품은 늘어났고, 소송 대상 특허기술도 다양화됐다. 그야말로 전면전이었다.
1년이 지난 지금, 두 회사의 소송은 소강상태에 접어든 느낌이다. 주요국 법원이 내린 판결에서 소송을 제기한 원고 측이 번번히 패소하면서 공격하는 쪽이 더 해볼 게 없는 형국으로 가고 있다. 이 때문에 머잖아 두 회사가 협상으로 해결할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12일에는 한 외신이 미국 캘리포니아 법원이 삼성과 애플에 법정 다툼 대신 협상을 통해 해결할 것을 제안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 매체는 특히 "삼성전자와 애플은 법원의 중재에 동참할 예정"이라며 "중재자는 양측의 동의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미 있는 것은 특허 전쟁을 통해 두 회사는 적지 않은 소송 비용을 지불했겠지만 두 회사 다 엄청난 이득을 챙겼다는 점이다. 두 회사의 분쟁 소식은 스마트폰 시장의 흐름을 삼성과 애플로 집중시켰고 두 회사는 이 시장의 이익의 90% 가량를 과점하게 됐다.
더 재미를 본 곳은 삼성이다. 애플은 스마트폰 시장 방어를 위해 삼성을 먼저 공격한 것일텐데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나 삼성 제품을 적극 홍보한 셈이 됐다. 협상설이 주로 애플 쪽에서 흘로나오고 삼성은 아직 강경 대응 입장을 고집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두 회사 사이의 특허소송 1년 과정을 되돌아본다.
◆애플은 왜 특허 전쟁에 나설 수 밖에 없었나
자본주의 시장에서는 특정 사업자의 '독점'을 허용하지 않는다. 부당한 독점이 후발 사업자의 성장에 위협이 되기 때문. 따라서 대부분의 국가들이 '반독점법'을 명시하고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누구라도 특정 사업자의 특허를 마음대로 가져다 써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특허를 취득했을 때 해당 기술에 대한 독점권이 일정 부분 주어진다. 특허를 침해한 모방제품에 대해 제조, 판매, 거래행위 자체를 금지시킬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휴대폰처럼 대기업 중심의 산업일 경우 '부당한 독점'과 '특허 권리' 사이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명확하기 구분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휴대폰 관련 특허는 수만 개에 이르기 때문에 시시비비를 가리기가 더 어렵다.
삼성전자와 애플간 소송이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뚜렷한 판결이 없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 같은 이유로 양측의 분쟁이 '권리 찾기'보다는 경쟁자를 '견제'하는 효과를 주기 위함이라는 시각이 많다. 애플이 특허 전쟁의 불을 붙인 건 특허 약점의 위험부담을 상쇄시키기 위한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지난 2009년 이후 피처폰 중심에서 스마트폰으로 재편되면서 애플은 기존 1~3위 사업자의 견고한 입지를 흔들어 놨다. 그 동안 수 만개의 특허를 축적해놓은 시장지배적 사업자들이 승승장구하는 후발사업자 애플을 한 순간에 망하게 할 수 도 있다.
'특허전쟁'의 저자인 정우성 최정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는 "애플은 휴대폰 시장의 후발 사업자로 특허 공세에 시달릴 위험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다른 사업자들을 특허로 공격함으로서 위험부담을 상쇄시킨 측면이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애플 입장에서는 특허 소송 이후 협상에 이르는 것이 가장 좋은 안"이라며 "협상을 진행하면 애플의 특허 약점은 일시에 해결 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삼성-애플 특허소송 일지(미국·호주·독일을 중심으로)
지역 | 날짜 | 내용 |
미국 | 2011.4.15 | 애플, 삼성전자 갤럭시S 4G 등이 자사 디자인과 특허를 침해했다며 캘리포니아 북부지방법원에 소 제기 |
미국 | 4.29 | 삼성, 애플이 삼성의 특허권 10개를 침해했다며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연방법원에 소장 제출 |
미국 | 6.28 | 삼성,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아이폰3G, 아이폰3GS 등 6개 애플 제품 수입 금지 요청 |
미국 | 7.1 | 애플, 캘리포니아 북부법원에 삼성전자 스마트 기기 4 미국 내 판매금지 가처분 소송 제기 |
미국 | 7.6 | 애플, ITC에 삼성 제품 수입을 금지시켜달라는 소송 제기 |
미국 | 7.28 | ITC, 삼성전자의 특허 침해 제소 수용 |
미국 | 12.3 | 애플의 미국 내 삼성전자 제품판매 금지 요청 기각 |
미국 | 2012.2.8 | 애플,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연방법원에 삼성전자 제소 |
미국 | 2.11 | 연방법원에 갤럭시 넥서스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 |
호주 | 2011.7 | 애플, 갤럭시탭10.1 판매금지 가처분을 연방법원에 신청 |
호주 | 8.1 | 연방법원, 호주 내 갤럭시탭 10.1 판매금지 명령 |
호주 | 9.16 | 삼성, 7개 특허 침해 혐의로 애플 제소 |
호주 | 10.13 | 갤럭시탭 10.1, 판매금지 조치. 삼성전자 항소 |
호주 | 10.17 | 삼성, 뉴사우스 웨일즈 법원에 아이폰4S 판매금지 가처분 소송 제기 |
호주 | 11.30 | 연방 항소 법원, 갤럭시탭 10.1 판매금지 가처분 무효화 |
호주 | 12.2 | 애플, 호주 대법원에 상고 |
독일 | 2011.8.9 | 뒤셀도르프 지방법원, 네덜란드를 제외한 유럽지역에서 삼성전자 제품을 판매금지해달라는 애플의 가처분 신청 수용 |
독일 | 8.12 | 삼성, 판매금지 가처분 무효소송 제기. 효력이 독일로만 제한. |
독일 | 12.16 | 삼성, 만하임 지방법원에 3G세대 통신표준특허 2건과 상용 특허 2건을 침해당했다며 애플 상대로 추가 제소 |
독일 | 2012.1.17 | 애플, 뒤셀도르프 지방법원에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10종의 판매 금지 처분을 요구하는 소송 제기 |
독일 | 1.20 | 삼성전자, 통신특허 침해 관련 본안소송 1차 패소(만하임) |
독일 | 1.27 | 삼성전자, 통신특허 침해 관련 본안 소송 2차 패소(만하임) |
독일 | 2.1 | 뮌헨 지방법원, 갤럭시탭 10.1N과 갤럭시 넥서스에 대한 판매금지 신청 기각 |
독일 | 2.9 | 뒤셀도르프 지방법원, 갤럭시탭 10.1N 판매금지 청구 기각 |
◆특허 전쟁 바람 타고 삼성 갤럭시S 승승장구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초기 시장에서 노키아, 림, 애플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뒤쳐져 있었다. 지난 2009년 삼성의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3.7%였고 2010년에는 8.0%이다. 같은 기간 애플의 점유율은 14.4%에서 15.9%로 증가해 삼성전자가 애플 점유율의 절반 밖에 미치지 못한 것이다.
소송이 진행되기 시작한 2011년부터는 판도가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한 해에만 스마트폰 9천740만대를 판매하면서 업계 1위인 19.9%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애플도 같은 해 9천300만대를 판매하면서 19.0%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이 후부터 스마트폰 1위 자리를 놓고 양사가 엎치락뒤치락하며 경쟁했다. 2012년 1분기에는 삼성이 28.2%, 애플은 22.4%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삼성이 1위로 오른 것도 주목할 일이지만, 세계 스마트폰 시장의 50% 이상을 삼성-애플이 차지하는 결과를 낸 것도 이채롭다.
이 같은 '드라마틱'한 점유율 변화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업계는 삼성전자와 애플이 소송전을 겪으면서 상대적으로 스마트폰 시장에서 열세였던 삼성의 인지도를 '애플 급'으로 격상시켜주는 효과도 작용했을 것으로 예상했다.
교보증권 김형렬 연구위원은 "소송 과정에서 양사의 스마트폰 시장 지위가 탄탄해지는 효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며 "소송을 기점으로 두 기업간 치열한 경쟁이 전개되면서 다른 기업은 끼어들기 어렵게 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김진영 로아컨설팅 사장도 "전체적으로 볼 때 양 사업자는 누가 스마트폰 시장의 헤게모니를 잡느냐라는 샅바 싸움을 한 것인데, 외부에서 볼 때는 스마트폰 힘겨루기로 비춰졌다"라며 "그러는 사이에 알게 모르게 구글 계열 스마트폰은 삼성전자가 최고라는 반사이익이 생겼다"라고 언급했다.
◆소송 1년 뒤, 두 회사 시장 집중력 급속히 강화
향후 몇 년간은 글로벌 휴대폰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애플에 견줄 수 있는 업체가 등장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시각이다. 두 사업자 보다 더 혁신적이고, 자본력을 갖추기는 상당히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1~2위와 나머지 사업자간 격차가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벌어지고 있다는 게 문제다.
휴대폰 시장이 스마트폰으로 급격히 이동하면서 피처폰 시장에서 강자였던 노키아도 올해 1분기 기준 삼성전자에 판매량 1위를 내줬다. RIM, HTC뿐 아니라 국내 기업인 LG전자도 고전하고 있다.
애플-삼성의 시장점유율을 합치면 50%를 넘는다. 노키아, RIM, 화웨이, HTC, LG전자, 소니에릭슨, 모토로라 등 7개 업체가 나머지 점유율을 조금씩 나눠갖는 구조다.
IT 전문 블로그 아심코는 지난 2011년 4분기 세계 전체 휴대폰 영업이익의 91%를 삼성과 애플이 차지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9%만이 나머지 사업자들의 몫인 것.
전문가들은 향후 3위 이하 휴대폰 제조사들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부품 수직계열화 및 특허 자산을 확보하지 못하면 장기적으로도 경쟁력을 찾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애플과 삼성은 각자 특허 소송을 진행하면서 '베낀 것으로 보일 수 있는' 디자인 외관을 수정하거나 통신 기술을 새롭게 확보하면서 위험 부담을 줄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부품과 기술의 수직계열화가 이뤄지면서 삼성전자와 애플의 경쟁력은 더욱 커지고 있다.
김진영 로아컨설팅 사장은 "삼성전자와 애플이 점점 더 성장할 수 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나머지 스마트폰 단말 사업자들은 이 경쟁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특허나 수직계열화를 가져가야 한다"며 "향후 삼성-애플이 스마트폰-태블릿-TV에 이르는 영역을 아우르며 제조업계 전체를 장악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두 회사 특허 소송, 결국 협상으로 해결할 것
업계 전문가들은 지금 삼성전자와 애플이 서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지만 조만간 협상에 나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독점법'에 자유로울 수 없는 삼성과, '특허 약자'인 애플이 한 발씩 양보해 적정 수준에서 협력하게 된다는 것이다.
양사가 분쟁을 겪으면서 남긴 교훈은 향후 스마트폰 시장의 새로운 질서가 될 것이라는 진단도 있다. 애플과 같은 후발 기업이 전통 시장에 진출했을 때 표준 특허 등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지 선례를 남겼다는 것이다.
정우성 변리사는 "스마트폰 등장한지 5년 내외, 태블릿PC는 불과 2년밖에 안된 시장에서 OS를 중심으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것들이 명확하지 않았다"며 "소송을 통해 경계선이 만들어지고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고 있다"라고 내다봤다.
김현주기자 hanni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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