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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화형식, 삼성 문화 뿌리째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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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 취임 25년 ②] 글로벌 삼성의 뿌리 '新경영'

[산업팀] 1987년 12월 1일 이건희 회장이 취임한 뒤 삼성이 극적으로 변신한 계기는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밝힌 '新경영 선언'이었다.

이 선언을 경영에 구체화하면서 삼성은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변신했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말로 요약되는 新경영 선언은 그동안 양(量) 위주로 운영돼왔던 삼성의 경영 방식을 질(質) 중심으로 완전히 바꾸는 일대 전환점이 된 것이다.

1995년 불량 휴대폰 화형식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돈으로 500억원 규모였다.

이 회장은 변화의 절박성을 경영 현실에 접목하기 위해 신경영 선언 이후 4개월간에 걸쳐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비롯해 일본 도쿄와 오사카, 독일 프랑크푸르트, 영국 런던 등 세계 주요 시장에 임직원 1천800여명을 불러들여 세계가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 지를 현장에서 직접 목격하게 했다. 또 도합 수백시간에 걸쳐 삼성이 나아가야 할 비전에 대해 직접 설명했다.

이 회장은 당시 한 인터뷰에서 "신경영 선언은 한국 사회 내부의 자그만 한 목소리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당사자인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150년 전의 '공산당 선언' 못지 않는 의의를 갖는 것이었다"고 강조한 뒤 "나는 완전히 배수진을 쳤다"고 설명했었다.

◆취임 이후 25년 동안 기업가치 303배 커져

신경영이 접목되면서 삼성의 체질은 급격히 강화됐고 그 성과는 엄청났다. 이건희 회장 취임 당시만 해도 삼성의 연간 매출은 약 10조원, 기업가치는 1조원에 불과했다.

현재는 매출이 383조원으로 당시보다 39배 늘었다. 기업가치 성장세는 더 놀랍다. 삼성의 최근 시가총액은 303조원에 달한다. 25년전에 비해 무려 303배나 커진 것.

순이익은 25년전 2천100억원 수준이었으나 지난해에는 20조3000억원으로 100배 이상 커졌다. 수출도 같은 기간 25배 증가했으며, 특히 이 회장이 신경영을 선언한 1993년 이후로는 15배나 늘었다. 직원 수도 16만명에서 37만명(2011년말 기준)으로 2배 이상 늘어났다.

특히 국내 총 수출에서 삼성이 차지한 비중은 25년 전 13% 남짓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28%에 달하면서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대표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변화는 위기에 대한 정확한 진단에서 비롯돼

이 회장이 심각한 위기를 느낀 건 글로벌 현장에서 들려오는 삼성 제품에 대한 경고음 때문이었다. 신경영 선언이 나왔던 1993년초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열린 제품 비교 평가회가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삼성의 전자 부문 사장단은 LA에 있는 가전제품 매장을 둘러봤다. 삼성 제품의 경쟁력 저하를 직접 확인해보라는 이 회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실제로 매장 중앙에는 GE를 비롯해 월풀, 필립스, 소니 등 경쟁사의 상품이 전시된 반면 삼성 제품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 구석자리를 처박혀 있었다. 이미 국내 1위에 올라선 삼성이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삼성의 지위가 얼마나 열악한 지를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이건희 회장은 그 원인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기 위해 그해 2월 당시 김광호 삼성전자 사장, 윤종용 삼성전기 사장 등 전자 부문 사장단을 LA 한 호텔에 불러 제품 비교 평가회를 열었다. 이 회장은 VTR,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등 70여 가지 경쟁사 제품과 삼성 제품을 하나하나 분해하면서 기능과 부품의 차이 등 삼성 제품의 한계를 일일이 지적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위기감을 불어넣었다. "우리 제품은 선진국을 따라 잡기에는 아직 멀었습니다. 2등 정신을 버리십시오. 세계 제일이 아니면 앞으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이 회장이 신경영 선언을 하게 된 직접적 계기는 '후쿠다 보고서'다. LA 비교 평가회 이후 이 회장은 그해 6월4일 일본 도쿄에서 당시 이수빈 비서실장, 윤종용 삼성전기 사장, 배종렬 홍보팀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삼성전자 기술개발 대책회의를 가졌다. 이 자리에는 당시 삼성전자 디자인 고문이었던 일본인 후쿠다 타미오도 참석했는데 그의 보고서는 충격적인 것이었다.

후쿠다는 '경영과 디자인'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삼성 제품 디자인의 문제점을 낱낱이 지적하면서 디자인 개혁을 이루지 않으면 삼성의 성장은 없다고 단언했다. 또 삼성의 디자인은 한심한 수준 이라고 혹평하며 자신이 삼성의 디자인 고문으로 온 걸 후회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디자인 경쟁력은 최근 애플과의 소송을 통해서도 드러났듯이 제품 성패의 관건이기도 하다.

이 회장은 또 기술개발 대책회의 이후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이동하는데 비행기 안에서 본 30분짜리 비디오 때문에 격분하게 된다. 이 비디오는 삼성의 사내 방송인 SBC가 제작한 것으로 세탁기 제조과정의 불량과 이에 대한 어설픈 응급조치를 고발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이 회장은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하자 마자 서울로 전화를 걸어 핵심 경영진을 프랑크푸르트로 소집한 뒤 비상경영회의를 통해 그 유명한 '新경영'을 선언하게 된 것이다.

◆반복되는 위기론 강조로 신경영 안착시켜

이건희 회장은 지난 2010년 경영 복귀 일성으로 '위기론'을 꺼냈다. 1987년 취임 이후 25년동안 이 회장은 숨막히는 위기로부터 자유로왔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성 대내외의 위기는 시시각각 찾아왔고 이 회장은 체질개선을 통해 이를 돌파해왔다.

이건희 경영 25년는 그래서 위기와의 지속적인 싸움이라고 할 수도 있다.

질(質) 중심의 신경영의 대표적 사례는 '휴대폰 화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회장은 지난 1995년 통화 불만이 많던 휴대폰을 수거해 리콜할 것을 지시했다. 또 당시 가격으로 500억원에 상당하는 수거 제품을 모두 불사르는 화형식을 진행했다. 양으로 승부하는 게 아니라 질로 승부해야 한다는 상징적 선언이었고 임직원에게 이를 깨우치게 하려는 극약처방이었다.

이 회장은 신경영 선언을 현실에 접목하기 위해 7ㆍ4 출퇴근제, 글로벌 역량 강화를 위한 지역전문가제도, IDS라는 디자인 연구소 설립 등 다양한 새 제도를 도입하였다.

특히 '인재 제일주의'를 경영의 원칙으로 내건 선대 이병철 회장의 유지를 이어받아 인재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강조했다. "앞으로 업무 절반 이상을 핵심 인력 확보에 둘 겁니다. 핵심 인재를 몇 명이나 뽑았고 이를 뽑기 위해 사장이 얼마나 챙기고 있으며 확보한 핵심 인재를 성장시키는 데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사장 평가 항목에 반영하도록 하십시요."

이 회장은 이 과정에서 자신이 느낀 위기 의식과 달리 현실에 안주하거나 체질개선에 나서지 않는 임직원에 대한 불만과 섭섭함을 지속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산업팀 digital@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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