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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신경영 20년, 이젠 '소프트 경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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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20년 위해 기초과학·SW 투자…창조경제에도 화답

오는 10일 삼성이 수원 디지털시티 내 신규 연구소 입주식을 갖는다. 연면적 약 30만㎡ 규모의 이곳 'R5' 연구소는 그동안 여러 곳에 나눠져 있던 무선사업부 연구인력 1만여명을 수용한다. 이번 연구소 완공으로 삼성 디지털시티는 연구 인력 약 2만3천명 이상이 상주하는 삼성전자의 '글로벌 R&D 메카'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삼성의 '갤럭시 신화'를 이어갈 미래 혁신이 여기서 시작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부풀고 있다.

삼성은 R5 연구소 완공에 앞서 7일 기존 선진제품 비교전시회를 새롭게 개편한 '삼성 이노베이션 포럼'도 개최한다. 이 행사는 이건희 회장이 1993년 신경영을 선포하면서 경쟁 제품과의 기술격차 확인 등을 위해 격년으로 열고 있는 행사다. 이 회장은 신경영 20년을 맞아 확대 개편한 올해 행사 역시 직접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 이노베이션 포럼이 열리는 7일은 '삼성 신경영 선포 20주년' 기념일이다. 삼성에겐 큰 의미가 있는 날이기 때문에 R5 연구소 입주식이 딱 사흘뒤인 10일인 것도 우연으로만 볼 수는 없다. 삼성 이건희 회장은 1993년 6월7일 핵심 경영진 200여명이 모인 독일 프랑크프루트 켐핀스키 호텔에서 "삼성은 이제 양 위주의 의식, 체질, 제도, 관행에서 벗어나 질 위주로 철저히 변해야 한다"며 신경영을 선포했다. 그 유명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발언도 여기서 나왔다. 당시 이 회장은 총 350시간 동안 임직원들과 대화를 나누며 신경영 정신을 설파했다.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포는 삼성 그룹 역사에서 전후를 긋는 중요한 사건이다. 지난 5월20일 '열정락(樂)서' 강연에서 '삼성의 오늘과 미래, 그리고 신경영'이라는 주제 발표를 맡았던 박근희 삼성생명 부회장 역시 "신경영 때의 충격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며 "1993년의 신경영이 없었다면 2013년 오늘의 삼성도 없었다"고 회상했다.

이 회장은 삼성이 실질보다 외형 중시의 관습에 빠져 있었다며 일갈했다. 실제로 삼성은 동남아 등 일부 시장에서만 부분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었는데도 일선 경영진은 눈앞의 양적 목표 달성에 급급해 부가가치, 시너지, 장기적 생존전략과 같은 질적 요인들을 소홀히 했다.

이에 대해 이 회장은 "우리는 자만심에 눈이 가려져 위기를 진정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대로 가다간 망할지도 모른다는 위기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고 한탄했다.

프랑크푸르트 선언 이후 삼성에는 대대적인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라인스톱 제도'다. 라인스톱제에서는 생산현장에서 불량이 발생할 경우 즉시 해당 라인 가동을 중단하고 문제점을 완전히 해결한 다음 재가동함으로써 문제 재발을 방지한다.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세탁기 생산라인이 신경영 이후 라인스톱제를 가장 먼저 도입했다. 라인스톱제는 이후 전자 관계사 모든 사업장으로 퍼져나갔다. 생산물량이 밀려 있는데도 불구하고 라인을 세워야 하는 생산 담당자들에게는 상당한 고통이었지만 효과는 컸다. 전자제품의 경우 1993년의 불량률이 전년도에 비해 적게는 30%, 많게는 50%까지 줄어들었다.

1995년에는 무선전화기 15만대를 불태운 불량제품 화형식도 있었다. 당시 삼성전자의 무선전화기 사업부는 제품 불량률이 무려 11.8%까지 올라가는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다. 이에 이건희 회장은 "삼성에서 수준 미달의 제품을 만드는 것은 죄악이다. 회사 문을 닫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시정해야 한다"며 약 150억여원 어치의 제품을 수거해 화형식을 거행, 전량 처분했다.

신경영 후 삼성은 눈부신 성장을 이뤘다. 그룹 매출이 29조원(1993년)에서 380조원(2012년)으로 13배 성장했다. 영업이익은 8천억원에서 38조원으로 47배 증가했다. 당시 14만명의 인력은 42만명으로 3배 가량 늘어났으며, 시가총액은 7조6천억원에서 338조원으로 44배나 덩치가 커졌다.

지난해였던 2012년 기준 삼성이 보유한 세계 1등 품목은 20개가 넘는다. 1993년에는 고작 2개였다. 삼성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 2012년 무려 201조원의 매출과 23조원의 영업이익을 거둬들였다.

신경영 20년이 지난 지금, 이건희 회장은 다시 삼성의 20년을 고민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 4월 석달간의 해외 체류를 마치고 귀국할 당시 신경영 20주년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20년이 됐다고 안심해서는 안된다"며 "항상 위기의식을 갖고 더열심 뛰고, 깊게 보고, 멀리 보고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희 부회장 역시 열정락서 강연에서 "삼성에게 있어 2013년은 1983년 창업해서 올해로 75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이고 삼성 100년 기업을 준비하는 중요한 해"라고 강조했다.

◆삼성, 朴정부 창조경제에 대규모 투자로 화답

삼성은 올해 R5 연구소 외에도 특히 기초과학과 소프트웨어 부문 R&D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정책에 화답하는 성격이 크지만 그와 동시에 삼성이 나아갈 미래 발전방향의 가닥을 잡았다고도 볼 수 있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 5월 초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순방길에 경제사절단 자격으로 참석하기 위해 출국했고 이후 일본 등을 거친 뒤 21일 귀국했다. 그 사이 삼성그룹은 굵직한 발표를 세 건이나 쏟아냈다.

우선 삼성은 5월13일 국가 핵심과제인 창조경제 구현을 위해 향후 10년간 1조5천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달 6월부터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을 설립해 기초과학 및 ICT 융합 기술개발 등 3대 미래 기술 육성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이다.

삼성은 일단 올해 3천억원을 우선 출연한다. 이후 2017년까지 5년간 7천500억원을 투입한 뒤 개선사항을 보완해 2022년까지 7천500억원을 추가 투자한다. 재단은 이를 재원으로 ▲과학기술의 근본인 '기초과학'분야 ▲제조업의 근간이 되는 소재기술 ▲부가가치 창출이 큰 ICT 융합형 창의과제 등 정부 창조경제 정책과 연계한 3대 미래 기술 육성프로그램을 추진하게 된다.

또, 삼성은 이틀 뒤인 15일에는 대규모 소프트웨어(SW) 인력 양성 계획을 발표했다. 올해부터 5년간 1천700억원을 투입해 5만명을 대상으로 SW 교육을 실시하고 매년 2천명의 SW 인력을 채용해 총 1만명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삼성은 먼저 대학생을 대상으로 'SW 전문가 과정'과 'SW 비전공자 양성과정'을 신설한다. 기존 SW 양성 프로그램으로 운영 중인 '삼성 SW 멤버십(전자)'과 '에스젠클럽' 역시 확대해 1만명 규모의 SW 인력을 양성하기로 했다. 초중고생을 대상으로는 '주니어 SW 아카데미'를 설립해 4만명에게 SW 조기교육을 실시한다.

SW 인력 채용과 관련해서는 기존 채용인력 연 1천500명보다 30% 늘린 2천명을 매년 채용해 5년간 1만명 이상을 고용한다. 또 올해 처음 도입한 인문계 전공자를 대상으로 한 SW 전환교육 프로그램인 '삼성 컨버전스 SW 아카데미'(SCSA) 역시 당초 200명 채용에서 400명 이상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삼성의 SW 인력 양성은 스스로의 경쟁력 제고와 더불어 정부의 창조경제 구현에 대한 화답이다. 특히 서비스 및 SW 관련 산업 및 인력 양성이 고용 등 일자리 창출에도 효과가 크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업계에서는 SW 산업의 고용 유발 효과가 제조업의 2배로 보고 있으며 이 때문에 SW 산업이 청년실업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삼성은 협력사들과의 상생을 위해서도 과감한 투자 결정을 내렸다. 삼성은 6월5일 1차 협력업체는 물론 2차 협력업체들까지 폭 넓게 아우르는 '상생협력 생태계 조성 프로그램'을 마련한다고 발표했다.

삼성은 올해 3천270억원을 시작으로 5년간 1조2천억원을 이 프로그램에 투입하기로 했다. 1차 협력업체에 대해서는 작지만 강한 강소기업을 목표로 인력 양성, 공동 R&D, 기술과 노하우 전수에 집중한다. 또 2차 협력업체들에게는 제조현장 혁신, 프로세스 혁신, 생산기술 지원, 교육 등 4대 분야로 나눠 업체별로 맞춤형 지원 방안을 마련한다.

삼성은 특히 1, 2차 협력업체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과 육성을 위해 '상생협력 아케데미'를 삼성전자에 설립할 예정이다. 또, 중소기업과 벤처, 개인창업가들에게 삼성이 보유하고 있는 특허의 무상 공개 범위를 확대해 창업 및 신제품 개발의 어려움을 해소한다는 계획이다.

◆제조업 강자 삼성전자, '소프트 경쟁력' 강화

삼성전자도 소프트웨어 부문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앞서 권오현 부회장이 대표이사로 취임하자마자 현 상황을 전자산업 격변기로 진단하며 '소프트 경쟁력'을 강조했을 정도다.

삼성전자는 최근 노키아의 안방인 핀란드와 애플이 있는 미국 실리콘밸리 등에서 R&D 조직을 양성하고 있다. 해당 지역에 있는 우수한 인재들을 흡수하려는 전략이라는 것이 업계 분석이다.

삼성전자는 이달 중 핀란드 에스포시에 영국 모바일 R&D 센터의 분소 개념으로 연구소를 설립할 예정이다. 삼성전자가 북유럽 지역에 연구소를 설립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현지 개발자들도 대거 채용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키아의 우수 인력들을 노렸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삼성전자 영국법인 문용석 부사장은 이와 관련 북유럽 언론 관계자들에게 보낸 초청장을 통해 "차세대 모바일 기술에 주력하기 위해 북유럽 R&D 센터를 연다"며 "혁신적인 기술과 효과적인 프로세스 개발을 위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삼성전자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도 R&D 인력을 공격적으로 채용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는 특히 리눅스 등 오픈소스 개발자들을 적극 영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에는 미국 멀티스크린용 앱 개살사인 '모블'(MOVL)을 인수해 실리콘밸리로 인력과 자산을 옮겼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8월 실리콘밸리 스탠포드 대학 인근에 '삼성전략혁신센터'(SSIC)를 설립하기도 했다. SSIC는 올해 1억 달러 규모의 '삼성촉진펀드'를 조성해 현지 창업 벤처에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소프트웨어 부문 투자는 제조업 중심의 삼성전자에게 다소 생소한 양상이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제조업 중심의 기술개발을 통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상품을 수출하며 성장해 왔다.

그러나 이제 하드웨어 제조 부문에서는 세계 선두로 올라선 삼성전자가 향후 경쟁력을 더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소프트웨어가 꼭 필요한 역량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 모바일 시장의 패권이 제조업 중심의 노키아나 모토로라에서 애플, 구글로 넘어간 것도 결국 소프트 경쟁력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디자인' 역량 강화도 이같은 분위기와 흐름을 같이 한다. 삼성전자는 지난 5월29일 서울 서초사옥에서 2013년 상반기 디자인 임원회의를 진행했다. 삼성전자 소비자가전(CE)부문장 겸 디자인경영센터장 윤부근 사장이 주재한 이날 회의에는 정보모바일(IM)부문장 신종균 사장, 경영지원실장 이상훈 사장, 미디어솔루션센터장 홍원표 사장, 무선사업부 전략마케팅실장 이돈주 사장,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 김현석 부사장 등 삼성전자의 핵심 경영진이 한 자리에 모였다.

삼성전자는 매년 상반기와 하반기에 디자인 회의를 가져왔다. 이번 회의는 특히 신경영 20주년인 올해 '삼성 이노베이션 포럼'과 맞물려 더욱 중요하게 다뤄졌다. 윤부근 사장은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회사 아이덴티티 강화에 초점, 멀리서도 삼성 제품인지 알 수 있도록 하는 방안 등 전략을 논의했다"고 설명했다.

삼성은 또 6월에는 한달 동안 '삼성 이노베이션 포럼'도 개최한다. 포럼 중에는 삼성전자의 사장들과 해외 법인장 등 경영진들이 총집결하는 하반기 글로벌 전략회의도 맞물려 있다. 수원과 기흥사업장에서 진행되는 글로벌전략회의는 대표이사인 권오현 부회장과 윤부근 사장, 신종균 사장이 주관한다.

◆새로운 20년을 향한 숙제

새로운 20년을 향한 숙제 또한 있다. 기존 사업 분야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은 물론이고 혁신을 통해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하는 게 무엇보다 시급하다.

우선 제품과 관련해서는 교만 없는 비교평가가 필요하다. 20년 전 신경영도 자기 반성부터 시작했다. 이건희 회장의 프랑크프루트 선언 이후 삼성은 기업의 현위치를 점검했다. 구체적으로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조직의 문제는 없나 ▲임직원의 인식 수준은 어떠한가 등을 면밀히 따졌다. 이후 ▲갖추어야 하는 덕목은 무엇인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엇을 추구하는가 등을 통해 전략과 목표를 재설정했다.

이 과정에서 비교평가는 필수 코스다. 스마트폰을 비롯해 TV, 냉장고 등 삼성전자의 많은 제품들이 세계 1등을 하고 있지만 언제 쓰러질지 모른다는 것이 이 회장의 위기론이다. 현재 삼성은 이러한 맥락에서 바이오, 의료 등 삼성의 미래 먹거리를 찾는 신사업 발굴도 계속 진행하고 있다.

1등 기업 답게 기업 시민으로서 모범을 보이는 일도 중요하다. 이 회장은 지난 2012년 신년사에서는 "사회로부터 믿음을 얻고 사랑받을 수 있어야 한다. 삼성은 국민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사회 발전에 동참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산업팀 digital@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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