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에서 쓰는 유해화학물질은 누출 사고 발생시 인체 등에 치명적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사고를 미리 예방하는 게 최선이다. 만약 사고가 발생했다면 신속히 대처하는 게 차선이다. 문제는 예방의 방법론이다. 한 쪽에서는 강력한 규제와 처벌이 최선의 대책이라고 말하고 있고, 다른 한 쪽에서는 산업계가 자발적으로 안전한 사업환경을 만들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책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아이뉴스24는 유해화학물질 누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최선의 대책이 무엇인지를 2회에 걸쳐 점검해본다 [편집자주] |
[산업팀] 지난해 구미에서 발생한 불화수소 누출사고는 유해화학물질이 얼마나 큰 위험을 불러오는 지에 대해 사회적으로 경종을 울렸다. 하지만 사고는 그치지 않았다. 올들어서도 화성에서 발생한 불산 누출 사고를 비롯해 크고 작은 사고가 잇따랐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최근 1년새 화학물질 누출이나 생산라인 등에서 발생한 폭발, 화재 등의 사고는 주요 사례만 20건에 달한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현대제철, LG화학, SK하이닉스 등 국내 주요기업 제조시설도 비켜가지 못했다.
사고가 빈발하자 정부와 국회는 시민사회의 의견을 받아들여 강력한 규제책을 들고나왔다. 새로 법을 바꾸어 처벌의 강도를 대폭 높였다. 하지만 사고 난 기업에 대한 사후 처벌을 강화하는 것 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목소리도 높다.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 먼저라는 이야기다. 또 기왕에 개정된 새 법의 경우 지나치게 강경해 기업을 필요 이상으로 옥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유해물 사고 막자?…쏟아지는 규제
사고 예방을 위해 어느 정도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데는 별 이견이 없다. 다만 규제와 처벌 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데 있다.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현실적인 시스템 마련이 더 시급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법을 강화하면 모든 사고가 없어질 것이라는 규제 만능주의 쪽으로 흐르는 듯한 분위기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유해화학물질 관리법 전부개정법률안(이하 유해물법)'을 필두로 환경부, 노동부 등 주무 부처도 별도의 법 제정 등을 서두르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개정된 법 또한 지나치게 강경해 기업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대표 발의한 유해물법은 유해화학물질 누출 사고가 발생할 경우 영업정지 처분에 갈음, 해당 사업장 매출의 5%까지 과징금을 부과하는 게 골자다. 단일 사업장의 경우 2.5%를 초과하지 못하도록 했지만, 사업규모, 위반행위에 따라 50% 범위내에서 가중 또는 감경 할 수 있도록 했다.
환경부는 여기서 더 나가 화학물질 사고가 발생한 해당업체 경영진의 책임을 묻는 '피해배상책임제'와 '삼진아웃제'를 골자로 한 특별법을 제정, 시행키로 했다. 연내 화학물질 사고가 일정기간 내 3회 연속 발생한 해당업체의 영업을 취소하는 '삼진아웃제'와 함께 화학물질 사고 등 환경오염피해 발생시 원인자(가해자)가 그 피해를 책임지고 배상토록 하겠다는 것이다.
환경부는 또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 안을 마련, 화학물질 누출·폭발 등 유사시 사업장 외부에 미치는 악영향을 사전에 평가하는 장외영향평가제도(Off-site Consequence Analysis) 역시 도입을 추진중이다.
고용노동부 역시 현행 1년이하 징역, 1천만원 이하 벌금 규정을 강화, 사고가 발생한 원청업체에 대해서도 5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부과 등을 골자로 한 '중대 화학사고 등 예방대책'을 연달아 발표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오는 2015년 시행되는 유해물법 개정안까지 국내 제조기업들은 유해물 누출 등 사고가 발생하면 해당 경영진에 대한 사법처리는 물론, 영업정지 또는 벌금은 물론 많게는 수조원에 달할 수 있는 막대한 과징금까지 물어야 한다.
유해물법 개정안 대로라면 기존 최대 3억원 이던 과징금은 사고 발생시 국내 주요 29개 제조기업의 경우 수천억∼조단위 까지, 화학기업 14곳은 수백억원대를 웃돌 전망이다. 더욱이 이들 제조업체들은 장치 산업 속성상 매출 대비 영업이익 규모가 적다는 점에서 과징금 폭탄마저 우려되는 상황.
가령 국내 주요 석유화학업체의 매출대비 이익률은 3% 선에 불과한 수준. 과징금 상한폭인 매출대비 5%를 밑도는 실정으로 영업익의 많게는 최대 10배 수준의 과징금을 물어야할 판이다.
재계 관계자는 "미국, EU 등 외국 규정도 과징금 한도액이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우리만 이런 식이라면 국내에 공장 짓기는 어려워 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더욱이 최근의 규제안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은 평소에도 유해물 취급 시설 설계부터 도급까지 관계당국의 감독 및 사후 규제를 받아야 한다. 일각에서는 제조기업의 화학물질 외부 위탁관리를 문제 삼아 이의 자체관리 전환을 주장하고 있는 상황. 그러나 이 경우 위탁관리 업체 일감이 줄어드는 등 현 정부 정책에도 역행된다는 지적이 만만찮다.
실제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폐기물 수집운반 처리 및 원료재생업' 시장 규모는 13조 7천억원 수준으로 관련 종사자 수만 5만 5천여 명에 달한다. 기업들이 화학물질 관련 작업을 자체관리로 돌릴 경우 이들은 고객을 잃는 셈이다.
이같이 정부 규제안에 대한 우려가 이어지면서 정부와 여당은 최근 당정협의를 갖고 유해물법 시행령 마련 등에 업계 의견을 수렴키로 한 상태. 정부가 업계 관계자가 참여하는 '협의체' 구성을 검토중인 가운데 유해화학물질 취급업체에 대한 전수조사 등을 거쳐 사고 예방과 맞춤형 지원책을 내놓을 계획이어서 얼마나 현실적인 개선안을 담을 지 주목된다.
◆산업 특성상 위험성 상존…규제 보다 예방 '최선'
우리나라는 생산현장에서 화학물질을 다루는 제조업 기반의 수출에 주력해 왔다는 점에서 태생적으로 이같은 사고발생의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는 셈이다.
실제 환경부 집계에 따르면 이같은 화학물질을 제조·수입해 사용하는 사업장은 약 2만 6천여 개에 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력한 사후 규제보다는 사전 예방을 통해 혹시 모를 사고를 예방하는 게 급선무라는 얘기다.
이와 관련 지난 7년간 발생한 화학사고 118건 중 36건은 시설 노후가 원인으로 이에 대한 개선이 시급한 상황. 최근 발생한 사고 역시 배관 파손이나 노후 시설 유지 보수 등 과정에서 벌어진 게 대부분이다.
이에 따라 사고에 따른 처벌식 관리보다 당장 필요한 노후시설 보수 등을 위해 시설 교체에 따른 세제지원, 절차 간소화와 같은 규제 개선 등이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최근 "환경사고에 대한 처벌만을 강화하는 규제는 지양돼야 한다"며 "사고예방을 위한 노후설비 교체와 작업장 안전관리에 대한 정부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실제 기업들은 잇따르는 사고의 재발 방지를 위해 환경안전관리 강화를 최우선으로 보고 관련 투자를 늘리고 나선 상태. 별도 조직을 신설하는 등 혹시 모를 사고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최근 불산 누출사고가 있었던 삼성전자의 경우 기흥·화성단지 산하 제조, 환경안전, 인프라를 통합 관리할 별도 조직을 신설, 운영에 착수한 상태. 또 삼성그룹 16개 계열사가 위험물질 관리 등 환경안전 분야 신입 및 경력사원 300여명을 충원하는 등 관련 전문인력 확보에도 나섰다.
LG 역시 최근 불산 혼산액 누출 등 사고가 발생한 LG실트론 관계자를 중징계 하는 등 그룹차원에서 환경안전 관리 강화 및 재발 방지에 나선 상황. 주요 계열사인 LG전자의 경우 최근 관련 인력 보강은 물론 오는 2015년까지 약 1천200억 원을 투입, 관련 시설 개선 등 환경안전 관리를 대폭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SK하이닉스 또한 외부 환경 자문위원회를 구성, 이를 통한 정기적인 평가 등 환경안전종합대책을 수립, 시행할 계획이다.
또 SK에너지, 금호피엔비화학은 CEO 직속으로 환경·안전·보건 관리를 총괄할 EHS위원회 신설·운영키로 했으며, 현대오일뱅크나 대림산업은 관련 총괄조직을 팀에서 부문으로 승격하거나 관련 조직을 공장, 본사로 분리 별도 운영하는 등 관리체계를 강화하고 나섰다.
이밖에 동서석유화학, 한주, KPX화인케미칼, 코오롱인더스트리, 한화케미칼 GS칼텍스 등도 환경 안전 전문 인력 채용이나 협력사에 대한 환경안전관리 지원을 강화하는 등 관련 투자를 늘리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도 이같은 기업들의 예방차원의 안전 관리 강화 및 인식제고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반도체·전자산업의 주요기업 CEO가 참석한 회의 이후 CEO가 직접 생산공장 현장을 방문, 안전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등 안전보건 의식향상 및 안전관리가 촉진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기업들도 최근의 사고로 안전관리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어느때보다 높고 대책마련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만큼 과징금과 같은 규제보다 환경 개선 등에 정부 정책이 집중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사고 예방에 최선을 다한 기업이 작업자 1명의 실수로 문을 닫는 최악의 상황은 없어야 한다"며 "산업 현실을 감안한 보완책을 통해 과잉규제로 인한 기업활동 위축이나, 오히려 고용이나 투자가 줄어드는 부작용을 최소화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산업팀 digital@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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