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경기자] 국제유가 하락세가 예사롭지 않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현재 금융위기 때보다 더 낮은 60달러 아래로 떨어진 상황으로, 이는 미국 셰일오일의 한계원가 수준이고, 석유수출회원국(OPEC)의 재정균형유가를 밑도는 선이다.
최근의 국제유가 하락 원인은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결과로 풀이할 수 있다.
미국의 셰일오일 공급이 확대되면서 OPEC의 고유가 지지 카르텔이 약화된 면이 있고, 자동차 연비 향상과 대체에너지 개발 등으로 원유 수요가 정체되기도 했다. 강달러 압력 심화의 영향도 있고,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내년 원유 수요가 올해보다 더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하며 투심 악화에 기름을 부은 면도 있다.
일반적으로 유가 하락은 물가를 떨어뜨리고 원유 수입국에 비용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 유가가 하락하면 주식시장은 호재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최근에는 유가가 하락하는 상황에서 글로벌 주식시장이 부진해 이례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유가와 주가의 동반 하락은 유가 흐름과 유사하게 움직이도록 설계된 상장지수펀드(ETF)가 주식시장에 영향을 미친 결과로 외신들은 풀이하고 있다.
유가 하락이 국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장기적으로 호재로 볼 만하다는 의견이 많지만, 마냥 웃을 상황은 아니라는 단서도 적지 않다.
키움증권은 "공급과잉 우려에 따른 국제유가의 하락은 장기적인 측면에서는 실질소득의 증가를 통해 소비지출 확대에 기여하고, 원자재 수입비용을 하락시킨다는 점에서 소비지출 비중이 높은 미국 및 원자재 수입국가인 한국 같은 국가에 모두 호재"라고 봤다.
다만 "단기적으로는 인플레이션 압력 저하에 따른 미국채 매력 상승 및 이에 따른 위험자산 비중 조절, 에너지 업종 비중이 커진 미국 하이일드 채권시장 불안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현상 강화 등에 따른 부정적 영향이 존재한다"는 의견이다. 투자자들이 국내 주식시장에서 자금을 빼서 매력도가 커진 미국 채권시장으로 갈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증권사의 윤창용 이코노미스트는 "원/달러 환율과 한국이 많이 수입하는 두바이유 가격 간 차이(기업 마진의 Proxy)는 시차를 두고 실물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며 "현 추세가 유지된다면 과거 시차를 고려할 때 내년 하반기부터 환율 상승과 유가 하락의 조합이 실물경제에 긍정적 효과를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원유가격의 속락은 실질구매력 개선으로 이어지는데, 내년 원/달러 환율 평균을 1천90원, 두바이유 가격 평균을 70달러로 가정할 경우 올해 대비 원화환산 두바이유 가격은 20% 하락하게 된다"며 "국내총소득 증가율은 국내총생산 증가율보다 1%p 이상 높아질 것"으로 추정했다. 유가 하락이 국내총소득 증가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내수의 원유 의존도가 과거보다 축소됐고, 해외 생산 확대 등으로 과거에 비해 긍정적 효과는 제한된다"는 지적도 했다.
이 증권사에 따르면 한국경제의 원유 의존도는 과거에 비해 후퇴했다. 연간 원유도입물량 중 내수용과 수출용 비중은 2000년에 25:75에서 2013년에는 15:85로, 내수용이 크게 줄었다는 것이다. 원유도입량의 85%는 수출용이며, 휘발유와 경유는 한국의 주력 수출품이 된 상황으로, 2000년대 초중반과 비교할 때, 원유가격 하락에 따른 긍정적 효과는 다소 위축됐다는 설명이다.
내년 세계경제 환경에서 미국경제는 양호한 흐름을 유지하는데(달러 강세) 반해 원자재 풍부국은 위축된다는(원유가격 약세) 전제에서 생각해 보면, 동북아 수출국은 여타 지역에 비해 유리한 입장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한국은 대미국 수출의존도가 낮고 원자재 풍부국에 대한 수출의존도가 높아 이들 국가중 열위에 놓여 있다는 설명이다.
크레디트 스위스에서는 "유가 급락이 물가에는 긍정적이지만 글로벌 수요부진이 그 효과를 제약하고, 유가 급락에 따른 물가 하방 위험에도 유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크레디트 스위스에 따르면 국제유가가 40% 급락하면 한국의 경우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흑자 비율이 4%p 확대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글로벌 수요부진이 수출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유가 하락에 따른 성장률 호전 효과는 그리 높지 않다고 분석했다. 이 증권사는 이를 감안해 내년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3.7%에서 3.8%로 소폭 상향조정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또 소비자물가지수(CPI)를 파악하는 구성요소 중 연료제품 비중이 커 유가 급락이 소비자물가상승률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점을 감안해 내년 국내 소비자물가상승률 전망치를 2.9%에서 0.9%로 대폭 하향 조정하고, 내년 물가동향에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혜경기자 vixe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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