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경기자] 한동안 강세였던 원화가치가 최근 약세 흐름을 보이면서, 부진했던 수출에 기회가 오는 것이 아니냐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22일 증권가에서는 당분간 원화 약세 흐름은 이어지겠지만 본격적인 수출 회복 여부에 대해서는 자신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대내외 요인이 뒤섞여 원화 약세가 나타나긴 했지만, 글로벌 경기가 부진해 수요가 살아나지 않은 상황에서는 그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것 때문이다. 물건값이 저렴해지면 판매하기 유리한 입장이긴 해도 소비자의 주머니 사정이 나쁘면 아무리 물건값이 싸도 구입을 미룰 수 있다는 얘기다.
◆원화 약세, 당분간 지속될 듯
7월 들어 원/달러 환율은 최근 2년 사이 최고 수준으로, 어느덧 1천150원을 돌파한 상태다. 7월 들어서만 3.8% 올랐고, 연초 이후로는 5.4%나 뛰었다. 지난 21일에는 1천158.30원까지 급등했다가 22일 오후 12시12분 현재는 1154원선으로 숨을 고르는 모양새다.
하락세를 거듭하던 원/엔 환율 역시 최근 9.0원을 바닥으로 뚜렷하게 반등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원화 약세는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매우 반가운 소식이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이 경기부양을 위해 경쟁적으로 돈 풀기(양적완화)에 나서면서 상대적으로 원화가 힘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져 우리 기업들의 수출에도 악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달 들어 원화의 약세 기조가 강화되면서 이 같은 추세가 얼마나 이어질 것인지, 실제로 수출 확대로 연결될 것인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원화 약세의 배경으로는 대외적으로는 그리스와 중국 등의 리스크가 완화되긴 했지만 불확실성이 존재해 유로화와 신흥국 통화가 약세를 보인 데다, 미국 경제지표 호조 및 연내 미국 금리 인상 가능성 등이 달러화 강세를 지지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일본의 3차 양적완화 가능성 약화에 따른 엔저의 속도조절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 등이 있다.
또 대내적으로는 경제성장률 하향,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 낮은 물가상승압력과 저금리 지속, 원화보다 달러화 수요 증가(자본수지 적자, 해외투자 증가 등) 등이 최근 원화 약세의 요인으로 꼽힌다.
이 같은 요인들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어서 원화 약세도 한동안 지속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의 2분기 거시 지표가 호전되면서 미국 연준의 연내 금리 인상은 이제 시장에서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는 미국이 '경기가 살아나고 있으니 그동안 풀었던 달러를 회수하겠다'는 의미여서 달러가 강세를 띨 이유가 된다.
한동안 강화된 엔저를 업고 주요 경쟁상대인 우리 수출 기업들을 가로막았던 일본의 분위기도 달라지고 있다. 당초 일본은 오는 10월에 3차 양적완화에 나설 계획이었으나 그동안의 양적완화 등에 따른 엔저효과로 일본 수출기업들의 실적이 호전되고 소비심리가 개선되는 등 일본 경기가 좋아지면서 3차 양적완화 시행 시기가 내년으로 늦춰질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삼성증권의 김용구 애널리스트는 "일본의 3차 양적완화 시기는 2016년으로 예상한다"며 "최근 방문했던 일본 유수의 금융사들(노무라 증권, 노무라 자산운용, 스미토모 미츠이 자산운용 등) 역시 우리와 생각을 같이한 상황으로, 하락 속도를 걷잡을 수 없었던 엔저 트렌드는 정책 기대감 약화를 이유로 본격적인 속도조절에 나설 것"으로 판단했다.
국내 사정으로 인한 원화 약세 요인은 다소 완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KB투자증권의 문정희 이코노미스트는 "추가적인 성장률 하향, 물가상승률 하향 등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원화 약세 강도는 다소 완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글로벌 수요 회복 멀어…본격 수출 회복 어려워
원화 약세가 수출 확대 효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단순한 원화 약세가 아니라, 글로벌 수요가 살아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KB투자증권의 조정현 애널리스트는 "원/달러 환율 상승 국면에서 자동차, IT 등 주요 수출 기업들은 원화로 환산되는 판매가격이 증가한다는 점에서 실적 개선 기대감은 높아질 것"이라면서도, "적어도 한 분기 이상의 환율 약세 구간이 지속될 경우, 그리고 글로벌 수입수요 개선 등에 따른 수출물량 증가 효과가 기대돼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달았다.
KTB투자증권의 채현기 이코노미스트는 "9월로 예상되는 미 연준의 금리인상 시점 이전까지는 글로벌 달러화 강세, 원화 약세 흐름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지만,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연준의 비둘기파적 스탠스가 재확인될 가능성이 높고, 외환당국의 속도조절 차원의 개입 경계심리 등은 원/달러 환율의 상승폭을 제한할 수 있다"고 봤다.
아울러 "원화 약세에도 불구, 글로벌 교역량 감소, 유가 하락 등으로 3분기 중 본격적인 수출 회복을 기대하기는 여전히 어렵다"고 내다봤다.
우리 외환당국의 환율 정책 스탠스에 주목할 필요도 있다.
삼성증권의 김 애널리스트는 "환율당국이 수출 촉진을 염두에 두고 적극적으로 환율시장에 개입할 것"으로 기대했다. 정부가 22조원의 재정보강안을 발표했지만 이것으로 3%대 성장률 사수와 경기 방향 선화를 꾀할 수 있을지 알 수 없고, 그동안 원화 강세 상황에서 수입물가가 하락했지만 내수부양 효과가 미미했다는 점에서 결국 수출을 키우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 애널리스트는 "결국 수출 제고가 현재의 어려움을 타개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인데, 원화 약세에 기반한 가격 경쟁력 확보가 중요하다"며 "특히 취약한 글로벌 수요환경과 그리스보다 열악한 제조업 경기환경은 수출진작을 위한 보다 근본적인 정책대응의 필요성을 암시하고 있어 이번 원화 약세는 단기에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혜경기자 vixe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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