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형기자]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의 활동이 제조사 해당국가 정부와 글로벌 본사를 압박하고 있다. 살균제 피해사건이 알려진 2011년 이후 이들 피해자 가족과 시민단체는 제조·유통사를 대상으로 사과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해 왔지만 공식적인 사과 의사를 표명한 곳은 한 곳도 없다.
20여 종류의 가습기살균제 중에서 피해신고의 60%가량을 차지한 제품은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이다. 이 제품을 제조, 판매해온 영국계 기업 옥시레킷벤키저의 샤시 쉐커라파카 한국사장은 2013년 국정감사에 나와 공식적인 사과 대신 '50억 원의 인도적 지원'이라는 표현을 써 항의를 샀다.
이후 옥시레킷벤키저의 지분 100%가 영국 본사에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피해자모임 구성원 4명, 환경단체·학계·시민운동가 3명 등 총 7명이 오는 지난해 5월 영국 본사를 항의 방문했으나 역시 사과를 받지 못했다. 옥시 측이 책임을 회피하는 데에는 고의성이 없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국내기업인 SK케미칼이 가습기 살균제 원료인 PHMG의 흡입독성을 이미 알고도 자사에 공급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레킷벤키저 코리아는 옥시크린, 에어윅, 물먹는 하마, 파워 크린토탈케어, 피니시, 울라이트, 데톨, 이지오프 뱅, 개비스콘, 스트렙실, 비트(Veet) 등 생활용품과 의약품을 국내에 유통하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사고가 알려진 2012년 이후 옥시레킷벤키저는 소비자들의 따가운 시선과 불매 움직임을 의식한 듯 자사 상품 TV광고에서 옥시 로고를 삭제하고, 기업명도 RB코리아로 변경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자료에 따르면 옥시레킷벤키저 제품으로 인한 사망자는 100명이다.
이후에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활동은 '진심어린 사과'를 전제로 활동의 수위를 높였다. 지난 21일에는 세퓨 가습기살균제(버터플라이펙트)의 원료사 덴마크기업 케톡스(Ketox)사의 책임을 추궁하는 집회와 항의방문이 이어졌다. 덴마크정부에 전하는 항의공문을 주한 덴마크대사관에 전달하고 검찰 고발과 함께 케톡스 책임자의 소환조사 요구와 살인죄 적용을 주장했다. 세퓨 제품이 2011년 11월11일 정부의 판매중지 결정까지 3년 동안 판매돼 사망자 14명, 생존환자는 27명을 유발했다는 게 이유다.
피해자 가족 모임 관계자는 "개별 민사소송에 임한 피해자가족 중 소송취하를 조건으로 합의금을 건넨 사례로 있지만 이들 기업이 사과의 말을 건넨 적은 없었다"고 밝혔다.
현재 검찰은 서울지검에 만든 '가습기살균제 피해사건 특별수사팀'이 피해자조사와 함께 제조사 소환조사를 진행 중이다. 피해자 가족들의 증언에 의하면 제조·유통사들은 '가습기살균제에 독성이 있는지 몰랐다', '흡입독성 시험을 하지 않았다'며 피해사건의 고의성 여부를 부정하고 있다. 해당 기업이 정말 몰랐다면 살인죄가 아닌 업무상 과실치사가 적용된다.
또 피해자 가족들은 23일에는 PB상품으로 사망피해를 유발한 GS리테일과 다이소 등기임원에 대한 고발을 이어갈 예정이다. 더불어 코스트코에서만 판매된 가습기클린업 판매원 제너럴바이오에 대한 고발도 이어진다. 이들 피해자 가족들은 지금까지 11차례 걸쳐 사망자가 나온 10개 가습기살균제 제품의 18개 제조판매사 등기임원 및 개인대표를 고발했다. 2월23일 옥시레킷벤키저 등기임원의 고발을 시작으로, 롯데마트, 홈플러스, 애경, SK, 이마트, 세퓨 등이 차례로 고발된 상태다.
피해자 가족과 함께 소송에 참여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제조사들이 십 수 년 동안의 판매 기간동안에 살균제가 가습기의 물과 섞여 실내 공기 중으로 살포돼 이용자들의 호흡기와 폐로 노출되면 어떻게 될지 안전시험을 하지 않은 결과가 소비자 226명이 죽는 결과를 낳았다"며 "이는 부작위 '살인죄'이며 '몰랐다'는 말 한마디로 200명이 넘는 죽음을 소위 '업무상 과실치사'로 넘어가선 안 된다"고 촉구했다.
피해가가족 모임 측은 책임 있는 기업의 '진심어린 사과'와 수백 명의 피해자를 유발한 '책임자 처벌'이 이뤄질 때 까지 관련 활동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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