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배기자] 그가 들고 다니는 발표자료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슬라이드가 꼭 포함돼 있다. "미래는 이미 여기 와 있다. 아직 퍼지지 않았을 뿐이다." 윌리엄 깁슨의 말이다.
그가 하고 싶은 말도 여기에 담겨 있다. 미래의 실상은 소프트웨어(SW)다. 그가 'SW 중심사회'를 외치는 이유다.
지난 29일 경기도 분당 판교에 위치한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 4층 집무실. 오전 11시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만난 김진형 소장은 '알파고' 탓에 밀려드는 일정을 소화하느라 바쁜 탓인지 살짝 피곤한 기색이었다. 그래도 눈빛은 부드러웠고, 목소리는 기분좋게 가벼웠다.
"이번에 알파고가 우리 사회에 커다란 메시지를 던졌어요. 변해야 된다는 거죠. 알파고 이전에도 SW중심사회라고 떠들고 다녔는데 임팩트가 작았어요. 저희가 힘이 없어서(웃음). 알파고가 와서 순식간에 전 국민에게 알려줬죠. 건방진 말 같기도 하지만 '우리가 열심히 노력하니 하늘이 돕는구나'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한때 '미스터(Mr.) 쓴소리'로 불렸던 그는 2년 전 초대연구소장을 맡아 연구소의 첫번째 직원이 됐다. 여기저기 강연을 다니고 패널 토론에 나가며 집요하게 SW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SW 중심사회 전도사'다. SW 중심사회라는 말을 처음 지어낸 곳도 연구소다.
◆"도구로서 SW 산업 집착할 필요없어…곡괭이는 금을 캐는 게 중요"
그런 그가 '도구로서의 SW 산업'이라는 표현을 꺼내며 SW산업을 더 크게 바라볼 것을 주문했다. 경쟁의 판을 바꿔야 한다는 말로 들렸다. 그는 카이스트(KAIST) 출신 1세대 개발자이기도 하다.
"도구로서의 SW산업은 이미 포화상태로 '레드오션'이에요. 도구 파는 외국 회사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우린 시작도 늦었고요. 더군다나 SW산업은 1등이 아니면 꼴등과 마찬가지에요. '승자독식(winner take all)'이 아주 강하게 나타나죠."
"새로운 영역에 계속 들어갈 수 있어야 됩니다. 도구를 팔러 다니는 것보다 도구를 쓸 줄 아는 사람들이 조선, 제조, 금융 등 다른 산업 구석구석에 가서 SW로 그 산업의 문제를 해결해 줘야죠. 도구로서의 SW 산업에 집착할 필요는 없어요. 곡괭이 들고 금을 캐러 가는데 곡괭이가 꼭 국산일 필요는 없는거죠. 빨리빨리 금을 캐서 잘 살면 되는 거지. 곡괭이 팔겠다고 나설 이유가 없어요."
새 영역에는 국가 운영도 포함된다. "산업만이 아니라 국가 운영 자체도 SW를 갖고 혁신해야 될 게 너무 많이 보여요. 지금의 전자정부를 생각해 보세요. 주민등록증 발급 대신해 주는 것 밖에 없지 않나요? 여기서 그칠 게 아니라 빅데이터 분석 등 공무원들의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도와주는 시스템이 돼야죠."
◆"SW 교육이 공교육 바꾸는 계기 되길"
그래서 그는 지금이라도 초·중·고등학교에서 SW 교육을 시작하게 된 것을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라 여겼다. SW 중심사회의 조건 중 한 가지는 국민들이 기본적인 'SW 소양'을 갖추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알파고가 왔을 때 우리 학교에서 SW 교육을 하나도 안 하고, 할 계획도 없었다고 하면 국민들이 불안해 하지 않았을까요? 지금은 '우리 아들도 SW를 배워서 알파고 같은 걸 만들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실 것 아니에요."
2018년부터 초·중등학교에서는 SW 교육이 필수화된다. 연구소 역시 SW 교육 분야의 최대 공헌자다.
그는 SW교육이 우리 교육 자체를 바꾸는 계기가 되길 희망했다. "지금 수업시간에 아이들은 거의 잠을 자고 선생님은 뒤에서 책을 읽어주는 것으로 끝나잖아요. SW는 암기과목이 아닙니다. 해보고, 만들어 보는거죠. 아이들이 배우면 아마 많이 좋아하고 재미있어 할 거에요. 이런 식의 교육이 교육 전반에 펼쳐져야 해요."
다만 그는 "새로운 것이 나오면 옛 것을 줄이고 축약해 배우기도 해야 하는데 우리는 기득권 세력으로 인해 교육과정이 사회 변화를 쫓아가는 것이 약하다"고 지적했다.
"대학 교육 역시 변해야 돼요. 공과대학은 SW 전문가보다 SW를 더 잘 써야 합니다. 자동차 회사가 몽땅 IT회사가 돼 버리고, 제조업이 IT가 됐는데 'SW 개발은 내 일 아니에요'라는 것은 말이 안 돼요."
그는 "다른 전공이라도 컴퓨터를 상당히 잘 써야 한다는 것"이라며 "남이 만들어준 프로그램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코딩을 해가며 문제를 풀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 R&D 체계 바꾸고 SW연구소 위상 확대해야"
국가 연구개발(R&D) 체계를 손질해야 한다는 말도 나왔다. 국가적으로 SW연구소의 위상이 커져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출연 연구소 가운데 정작 SW 전문 연구소는 없지만 이미 숫자가 너무 많아 새로 연구소를 만들거나 확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라는 게 그의 말이다. 이는 결국 혁신을 위한 역동성을 떨어트린다.
"우리나라가 R&D에 18조원이라는 돈을 씁니다. 국민 소득대비 전세계 1등입니다. 이중 IT 예산이 3조원에요. 하지만 나온 건 없어요. 요새 출연 연구소를 활용해 기업이 돈 벌었다는 얘긴 별로 없습니다. 생산성이 없는 겁니다."
소비자로서 정부의 역할에 대한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SW 소비자로서 정부가 제대로 해야 한다는 게 제가 계속 주장하는 메시지였어요. 솔직히 말해 이 분야는 성과가 별로 없어요. 공무원들은 쉽게 안 변해요. 지금 클라우드 컴퓨팅으로 가면서 전산실이 의미가 없어졌지만 우리나라는 클라우드를 4%밖에 안 써요. 외국은 이미 40%를 넘어갔는데요. 공공 부문이 선진적인 SW 소비자가 돼야 합니다."
김국배기자 vermeer@inews24.com 정소희기자 ss082@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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